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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4:32-51

bibletopics 2025. 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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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의 계절, 그리고 숨은 심판의 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난주간의 길을 걷는 우리의 발걸음이 점점 더 무거워지는 이때에, 오늘 본문 마태복음 24장 32절부터 51절까지의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시계 바늘 없는 시계를 붙잡고 살아가야 할 성도의 숙명을 다시 묵상하게 만듭니다. 예수님께서는 종말에 관해 말씀하시되, 단순한 공포나 경고가 아닌, 영적 감각을 일깨우는 은유로 제자들의 마음을 두드리십니다. 그 가운데 오늘 우리는 무화과나무에서 시작된 한 비유를 통해, 깨어 기다리는 믿음이 무엇인지, 주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종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무화과나무의 시간표(마 24:32-35)

주님께서는 먼저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드십니다.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마 24:32). 여기서 무화과는 단순한 식물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을 상징하기도 하고, 동시에 하나님의 시간표를 감지하는 영적 감각을 뜻합니다. 가지가 연해지고 잎이 돋는 그 미세한 변화는, 겉으로는 하찮아 보이지만, 그 안에는 커다란 계절의 전환이 숨어 있습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첫 번째 교훈입니다. 주님의 오심은 거대한 나팔 소리로만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징후 속에 이미 그 발걸음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난주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말씀은 더욱 선명합니다. 십자가를 향하신 예수님의 여정 역시, 찬란한 무대가 아니라, 조용한 감람산의 침묵 속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 24:35). 그분의 말씀은 흙과 별보다도 견고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눈앞의 혼돈보다 말씀의 성실함을 신뢰해야 합니다. 무화과의 계절을 읽는 눈, 그것이 바로 말씀을 통해 깨어 있는 눈입니다.

 

알지 못하는 날, 그러나 준비된 심령(마 24:36-41)

이제 주님은 중요한 진실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 24:36). 이는 우리 인간의 가장 큰 한계를 말해줍니다. 우리는 시간을 추론하고 싶어하고, 징조를 계산하려 하지만, 주님은 그 모든 예측을 초월하십니다. 고난주간에 예수님께서 침묵 속에서 겟세마네를 오르실 때도, 그 시점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사람의 계산을 넘어서는 영역입니다.

 

그렇다고 주님의 오심이 불확실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확정되었으나 예측할 수 없다는 데 본질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우리에게 깨어 있으라고 하십니다. 노아의 때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며, 일상의 반복 속에 파묻혀 있다가 갑자기 홍수에 휩쓸려 갔습니다(마 24:38-39). 고난주간은 이 무감각한 일상을 찢어내는 주님의 일격입니다. 우리가 빠져 있던 일상의 흙먼지를 털고, 거룩한 고통의 결로 방향을 전환하게 하십니다.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음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마 24:40). 이 말씀은 심판의 차별이 아니라, 은혜의 선택입니다. 모든 사람이 외형상 똑같은 삶을 살아도, 그 심령의 기울기 하나가 영원을 결정짓습니다. 고난을 통해 깨어난 자만이 그 날에 주님의 부름에 응답하게 될 것입니다.

 

도둑 같은 임재, 종의 자격(마 24:42-44)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마 24:42). 주님은 종종 도둑으로 비유됩니다. 무섭지요? 그러나 이 도둑은 죄를 훔치러 오는 이가 아니라, 은혜를 남기고 가시는 분입니다. 다만 문제는 우리가 그분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도둑의 시간은 예고되지 않습니다. 믿음은 예측이 아니라, 준비입니다. 기름을 준비한 다섯 처녀처럼, 우리는 고난주간을 단지 의식이 아니라 준비의 시간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여러분, 주님의 고난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오래 전부터 그날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셨고, 제자들은 이해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분은 계속 오고 계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준비되어 있는가입니다.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 24:44). 이 말은 경고이자 초청입니다. 우리의 영적 시계를 다시 맞추라는 초청입니다. 준비된 심령은 어떤 시각에도 주님을 맞을 수 있는 깨어 있는 자입니다.

 

충성된 종과 악한 종의 길(마 24:45-51)

마지막으로 주님은 종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마 24:45) 여기서 핵심은 ‘때를 따라’입니다. 충성은 단순한 일의 반복이 아니라, 시기를 아는 분별력에서 출발합니다.

 

고난주간은 ‘때’를 분별하는 시간입니다. 이때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단지 경건한 모양을 갖추는 것이 아니라, 양식을 나누는 종이 되어야 합니다. 이 양식은 단지 먹을 것이 아니라, 말씀의 양식, 위로의 양식, 희생의 양식입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양식을 나누는 자로 부름받았습니다.

 

그러나 반대편엔 악한 종이 있습니다. 주인의 더딤을 빌미로 방탕을 택한 자입니다(마 24:48-49). 그 종의 끝은 충격적입니다.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와 같이 벌하여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 24:51). 외식하는 자—즉 속은 고난을 모르면서 겉은 신실한 척하는 자가 바로 이 악한 종입니다. 고난주간은 이 위선을 찢는 주님의 손길입니다. 우리는 고통 앞에 진실해져야 합니다. 십자가를 향해 가는 길에는 외식의 가면이 설 자리가 없습니다.

 

마무리 묵상

사랑하는 여러분, 무화과나무는 어느 순간 잎을 냅니다. 도둑은 어느 날 밤 찾아옵니다. 주님은 그 모든 징조와 은유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깨어 있으라. 준비하라. 나를 맞을 그 날을 잊지 말라."

 

이 고난주간, 우리는 십자가를 기억할 뿐 아니라, 그 십자가를 통해 지금 내 안에 어떤 시간이 흐르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오늘이야말로 잎을 돋게 할 시간이고, 기름을 채울 시간이며, 양식을 나눌 시간입니다.

 

주님은 오십니다. 우리가 그것을 잊든 말든, 그분은 성실히 다가오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이 고난주간에, 그 어느 때보다 내 영혼을 일으켜 세우고, 십자가의 빛 앞에 자신을 드러내며, 충성된 종으로 그분을 맞을 준비를 하시길 바랍니다. 주님의 손에 붙잡힌 양식이 되어 이 세상에 나누는 자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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