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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4:15-28 종말의 표적들

bibletopics 2025. 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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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폐함의 시간 속에서 주를 찾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난주간을 맞아 다시금 십자가를 바라보며 우리 영혼의 깊은 중심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마태복음 24장 15절부터 28절까지의 말씀은, 주님의 십자가 고난의 문턱에 선 이들에게 던져진 매우 날카롭고도 비통한 예언입니다. 이 본문은 단순한 종말의 풍경을 그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 땅에서 의로움을 지키며 살아가는 자들이 겪게 될 영적 황무지, 그 속에서 주님의 발자취를 좇는 이들의 믿음의 투쟁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다(마 24:15)

주님께서 감람산에서 제자들에게 하신 이 말씀은 그저 시간의 끝에 대한 예언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다가오고 있는 현실에 대한 탄식이자, 다가올 심판의 서막입니다.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마 24:15) 이 말씀은 단순히 역사 속 한 사건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거룩함의 가장 깊은 곳에 더럽혀진 것, 하나님이 계셔야 할 자리에 우상이 세워지고, 진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 거짓이 득세하는 시대적 징조를 말씀하신 겁니다.

그 황폐함은 단지 성전이라는 건물의 파괴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영혼 깊은 곳, 하나님을 예배하는 그 마음의 성소가 무너지는 광경을 뜻하기도 합니다.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다는 말은, 본질이 왜곡되고 중심이 무너지는 상태를 말합니다. 십자가의 복음이 물질과 성공으로 포장될 때, 우리도 이 경고 앞에 서 있는 것입니다.

도망하라, 뒤돌아보지 말라(마 24:16-20)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마 24:16). 이 도망은 단지 공간의 이동이 아닙니다. 그것은 존재의 방향을 바꾸는 결단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도망은, 현실을 도피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 타협을 끊고 세상으로부터 탈출하라는 요청입니다.

지붕 위에 있는 자가 집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오지 말고(마 24:17), 밭에 있는 자도 겉옷을 가지러 집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마 24:18). 왜일까요? 그것은 물건과 겉옷에 대한 말씀이 아니라, 미련과 후회에 대한 말씀입니다. 신앙의 도약은 미련을 끊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영적 위기의 시간에 뒤를 돌아보는 자는 소금기둥이 됩니다. 로마 군대의 포위가 현실화되기 전에, 믿는 자들은 결단해야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지켜야 할 신앙의 지점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고난주간은 뒤돌아보지 않는 믿음의 전진을 결단하는 시간입니다.

재앙의 날, 주님의 애통(마 24:21-22)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세상 시작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마 24:21) 이 절규는 예수님의 탄식입니다. 단순한 예언적 설명이 아니라, 세상의 부패와 악이 임계점을 넘어설 때, 하나님의 진노와 동시에 하나님의 자비가 어떻게 만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 환난은 믿는 자에게도 피할 수 없는 고통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환난 가운데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시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마 24:22) 이 말씀은 단호한 절망 속에 숨겨진 은총입니다. 고난주간이 우리에게 주는 위로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은 절망을 줄이십니다. 그분은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시간을 단축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겪는 고난이 아무리 길어 보여도, 하나님은 그것을 감하시고, 줄이시고, 견딜 만한 만큼만 허락하시는 자비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를 묵상할 때 단지 예수님의 고통을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줄이신 그 심판의 시간을 봐야 합니다.

거짓 광명의 유혹(마 24:23-28)

이제 예수님은 더 깊은 경고를 하십니다.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마 24:23). 고난과 혼란의 시기에는 언제나 거짓 메시아, 거짓 선지자가 등장합니다. 그들은 놀라운 이적과 기사를 행하며 택하신 자들까지도 미혹하려 합니다(마 24:24). 이 말씀은 너무나 오늘의 시대와 닮아 있습니다.

우리는 화려한 기적 앞에 무릎을 꿇기 쉽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마 24:25).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진리는 기적이 아닙니다. 진리는 십자가입니다. 고난의 길, 눈물의 골짜기, 오해받는 믿음, 그리고 그 길을 포기하지 않는 고요한 순종이 진짜 믿음입니다.

거짓 그리스도는 사람을 위로하는 척하지만, 사실은 사람을 삼키려는 늑대입니다. 참된 그리스도는 사람을 향한 사랑 때문에 자신이 상처입는 분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기까지, 자신을 내어주는 그 길만이 진짜 그리스도의 길입니다. 주님은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같이 임하신다고 하셨습니다(마 24:27). 즉, 주님의 오심은 숨겨지지 않으며, 스스로를 증명하십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주님은 감춰진 빛이 아니라, 마침내 드러나는 빛입니다.

"주검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지니라"(마 24:28) 이 말씀은 이해하기 어려운 듯 보이지만, 사실은 명확한 통찰입니다. 부패한 곳에는 반드시 심판이 임합니다. 고난주간은 우리가 부패한 본성을 고백하고, 그리스도의 심판 앞에서 자복하는 시간입니다. 독수리는 날카로운 눈으로 주검을 찾아내듯, 하나님의 공의는 은밀한 죄도 결코 놓치지 않습니다.

마무리 묵상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은 종말의 그림자를 묘사하지만, 그 그림자 아래 숨겨진 빛을 우리로 보게 합니다. 주님의 고난은 무너짐의 예언을 넘어, 회복의 길을 여는 구속의 역사입니다.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서는 그 시간에도, 주님은 여전히 거룩함을 찾으십니다. 환난의 날에도, 하나님은 시간을 줄이시며 당신의 택한 자들을 보호하십니다.

고난주간은 단지 감정의 슬픔이 아닙니다. 그것은 믿음의 근육을 단련하는 시간입니다. 미혹 앞에 눈을 뜨고, 환난 앞에 믿음을 세우며, 뒤돌아보지 않고 오직 주님의 임재를 사모하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붙든다는 것은, 때론 도망하는 용기를 선택하고, 때론 십자가 앞에 머무는 고통을 견디는 일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멸망의 한복판에서 피어난 구원의 증거입니다. 그분의 길을 따라 걷는 우리 모두가, 이 고난주간 동안 진리의 눈을 밝혀 미혹을 이기고, 자비의 귀를 열어 주님의 부르심을 듣고, 믿음의 발걸음을 모아 십자가의 언덕을 함께 오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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