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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 예수님 행적, 부활주일, 생명의 문이 열리다

bibletopics 2025.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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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주일, 생명의 문이 열리다

부활주일은 기독교 신앙의 가장 중심이 되는 날이며, 죽음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를 기념하는 축제의 날입니다. 고난주간의 침묵과 죽음, 슬픔과 절망을 지나, 마침내 무덤이 열리고 생명의 주가 일어나신 그 아침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새로운 소망과 생명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다양하게 증언하고 있으며, 각 기록은 부활의 신비와 확실함, 그리고 우리에게 주는 실존적 도전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부활의 사건을 단지 과거의 기념으로 두지 않고, 오늘 우리 삶 속에서도 부활의 능력이 살아 역사하도록 받아들여야 합니다.

무덤을 찾은 여인들과 부활의 첫 증거 (마태복음 28:1-10, 마가복음 16:1-8, 누가복음 24:1-12, 요한복음 20:1-18)

안식일이 지나고 주간의 첫날 이른 아침,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여인들은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바르기 위해 무덤을 찾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도착했을 때, 무덤은 이미 열려 있었고, 예수님의 시신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천사가 나타나 말합니다. “너희가 찾는 예수는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살아나셨다’는 헬라어 ‘에게이로(ἐγείρω)’는 단지 깨어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상태에서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일으켜짐을 의미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부활이 단순한 회복이나 환상이 아닌, 실재적이고 역사적인 하나님의 능력의 사건임을 강조합니다.

여인들은 두려움과 기쁨이 섞인 마음으로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이 소식을 전합니다. 마태복음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여인들에게 직접 나타나 “무서워하지 말라”고 하시며,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만나시겠다고 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부활하신 주님이 먼저 연약한 자들에게 찾아가시고, 사명을 주신다는 점에서 매우 상징적입니다.

이 여인들은 복음의 첫 증인입니다. 당시는 여인의 법적 증언이 신뢰받지 못하던 시대였지만, 하나님은 그러한 인간의 편견을 뛰어넘어 부활의 첫 소식을 여인들을 통해 선포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나라는 약하고 보잘것없는 자들을 통해 이뤄진다는 진리를 다시금 보여줍니다.

우리도 이 여인들처럼 주님의 부활을 경험한 자로서, 이제는 그 생명의 소식을 세상에 전해야 할 사명을 가진 자입니다. 무덤을 찾는 자가 아니라, 부활을 선포하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과 믿음의 회복 (누가복음 24:13-49, 요한복음 20:19-29)

부활하신 예수님은 여인들에게만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두 제자가 엠마오로 가던 길에서도 나타나십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죽음으로 실망하고 있었지만, 예수님은 그들과 동행하시며 성경을 풀어 설명해주십니다. ‘동행하다’는 헬라어 ‘수잘레우오(συζητέω)’는 단순한 길벗이 아니라, 마음과 진리를 나누는 깊은 교제를 의미합니다.

이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으나, 떡을 떼는 순간 그들의 눈이 밝아져 예수님을 알아봅니다. 이는 말씀과 성찬 가운데 주님을 인식하게 되는 신앙의 본질을 잘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그들은 즉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제자들에게 이 사실을 증언합니다.

그날 저녁, 문을 닫고 두려움에 떨고 있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나타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예수님의 첫 말씀은 평강입니다. 부활은 죄와 사망을 이긴 승리이며, 그 승리는 두려움과 불안을 평강으로 바꾸는 능력입니다.

특히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8일 후 예수님은 다시 나타나셔서 도마에게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시며 믿음을 회복시켜주십니다. 도마는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은 “보지 않고 믿는 자들은 복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장면은 부활에 대한 인간의 의심과 하나님의 인내, 그리고 믿음의 회복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오늘날 우리도 때로 의심하고 연약할 수 있지만, 주님은 그런 우리를 향해 손을 내미시고 믿음을 다시 일으키십니다.

 

사명을 주시는 부활의 주님 (마태복음 28:16-20, 요한복음 21장)

부활의 마지막 장면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갈릴리로 부르시고, 마지막 사명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이 말씀은 부활 신앙이 단지 개인적인 기쁨에 머무르지 않고, 세상을 향한 선교적 명령으로 확장되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이 사명은 헬라어 ‘마쎄튜오(μαθητεύω)’—제자로 삼다—에서 드러나듯이 단순한 전도가 아니라, 삶 전체를 변화시키는 제자 양육을 포함합니다. 주님은 이 사명을 주시며,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하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단지 하늘로 올라가신 분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주님이십니다.

요한복음 21장에서는 베드로가 갈릴리 호숫가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밤새 아무것도 잡지 못한 베드로에게 다시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라고 하시고, 풍성한 물고기를 잡게 하십니다. 그리고 베드로를 따로 불러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질문을 세 번 하십니다. 이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것을 회복시키는 장면이며, 그에게 다시 “내 양을 먹이라”는 사명을 맡기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실패한 자를 다시 부르시고, 상한 심령을 회복시키시며, 위대한 사명을 맡기시는 분이십니다. 부활은 단지 생물학적 생명의 회복이 아니라, 깨어졌던 인생의 회복과 새로운 방향성을 부여하는 은혜의 출발점입니다.

 

결론

부활주일은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생명으로 옮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를 선포하는 날입니다. 무덤은 비어 있고, 주님은 살아나셨습니다. 이 부활은 단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 우리 안에서 일어나야 할 생명의 사건입니다. 절망은 끝났고, 소망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여인들처럼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하며,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처럼 말씀과 성찬 가운데 주님을 만나야 하며, 도마처럼 의심을 넘어 신앙의 고백에 이르러야 하며, 베드로처럼 실패를 딛고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부활은 우리를 일으키는 능력이며, 세상을 향해 나아가게 하는 동력입니다. 오늘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며, 그분과 함께 걸으며, 그분의 생명을 세상에 전하는 제자의 삶을 살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주님은 살아 계시며,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할렐루야,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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