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금요일 행적, 십자가 위에 드러난 구원의 은혜
고난주간 금요일, 십자가 위에 드러난 구원의 은혜
고난주간의 금요일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자, 구속사의 정점에 해당하는 날입니다. 이 날은 전통적으로 ‘성금요일(Good Friday)’이라 불리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날입니다. 복음서 기자들은 이 날을 중심으로 예수님의 고난, 심문, 십자가형, 죽음과 장사에 이르는 일련의 사건들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으며, 이 사건들은 예언의 성취이며 하나님의 사랑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우리는 이 날의 사건들을 통해 십자가의 복음이 어떤 희생 위에 세워졌는지를 다시금 깨닫게 되며, 그 은혜 앞에 무릎 꿇고 깊은 회개와 감사로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재판과 십자가형 선고 (마태복음 27:1-26, 마가복음 15:1-15, 누가복음 23:1-25, 요한복음 18:28-19:16)
이른 아침,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예수님을 결박하여 빌라도에게 넘깁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신성모독으로 정죄했지만, 로마 총독의 승인을 받아야 사형을 집행할 수 있었기에, 정치적 반역자라는 죄목으로 고발합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했으나, 군중의 압력과 민란이 일어날 것을 두려워하여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줍니다.
빌라도는 군중 앞에서 물을 씻으며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군중은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라고 외치며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합니다. 이 장면은 인간의 불의와 두려움, 그리고 집단적 광기의 위험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내어주기 전, 죄수 바라바와 예수 중 하나를 놓아주겠다고 제안합니다. 바라바는 강도요 폭도였으나, 사람들은 예수 대신 바라바를 선택합니다. 이 장면은 죄 없는 의인이 버림받고, 죄인이 풀려나는 복음의 아이러니를 드러냅니다. 이는 우리 모두가 바라바처럼 죄인이지만, 예수님의 희생으로 자유함을 얻게 되었음을 상징합니다.
‘내어주다’는 헬라어 ‘파라디도미(παραδίδωμι)’는 유다의 배신, 군중의 외침, 그리고 빌라도의 결정에서 반복되며,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예수님께서 죄인을 위해 자발적으로 자신을 내어주셨음을 강조합니다.
십자가의 길, 고난의 행진 (마태복음 27:27-44, 마가복음 15:16-32, 누가복음 23:26-43, 요한복음 19:17-27)
로마 군사들은 예수님을 조롱하며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고,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라 외치며 침을 뱉고 때립니다. 그런 후 예수님은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향해 걸어가십니다. 이는 고통의 행진이며,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모든 인류의 죄를 짊어지시는 구속의 여정입니다.
한편, 십자가를 짊어지기 어려워하시는 예수님을 대신해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십자가를 지게 됩니다. 이 장면은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제자의 본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고난을 피하고 싶지만, 십자가를 함께 지는 자리에 설 때에야 비로소 참된 제자가 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쓰디쓴 쓸개 탄 포도주를 마시게 하나 거절하십니다. 이는 고통을 끝까지 감당하시려는 결단입니다. 그리고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십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다’는 ‘스타우로오(σταυρόω)’라는 헬라어로, 가장 비참하고 수치스러운 사형 방식을 가리킵니다.
그분은 좌우에 강도 두 명과 함께 못 박히셨고, 사람들은 조롱하며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내려오라”고 외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침묵하시며, 그 자리를 끝까지 감당하십니다. 한 강도는 그를 비웃었고, 다른 강도는 회개하며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하소서”라 고백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십니다. 이는 마지막 순간에도 죄인을 구원하시는 은혜의 선언입니다.
십자가 위의 죽음, 하나님의 사랑의 정점 (마태복음 27:45-56, 마가복음 15:33-41, 누가복음 23:44-49, 요한복음 19:28-37)
정오부터 오후 3시까지, 온 땅에 어둠이 임합니다. 이는 자연의 현상이 아닌, 창조주께서 아들의 고통 앞에 잠시 숨을 거두신 듯한 상징적 현상입니다. 예수님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 외치십니다. 이 말씀은 시편 22편의 성취이자, 아버지와 아들의 단절을 경험하신 절정의 고통입니다.
그 후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τετέλεσται, 테텔레스타이)"라 선언하시고 영혼을 아버지께 의탁하십니다. 이 표현은 '완전히 성취되었다'는 의미로, 구속사의 모든 계획이 완성되었음을 선포하는 말입니다. 십자가는 실패가 아니라 완성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단지 죽으신 것이 아니라,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그 순간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이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가로막던 장벽이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완전히 제거되었음을 뜻합니다. 이제 누구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는 은혜의 복음이며, 누구든지 그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지켜본 백부장은 말합니다.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이 고백은 이방인의 입을 통해 나온 최초의 복음적 선언이며, 그리스도의 죽음이 온 인류를 향한 것임을 증명합니다.
장사와 무덤의 안식 (마태복음 27:57-66, 마가복음 15:42-47, 누가복음 23:50-56, 요한복음 19:38-42)
예수님의 시신은 아리마대 요셉이라는 공회원에 의해 정중히 수습되어 바위 속 무덤에 안장됩니다. 요한복음은 니고데모도 함께 했다고 기록하며, 예수님을 찾았던 자들이 이제는 믿음의 고백으로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장사되셨고, 무덤은 바위로 막히고 경비병들이 지키기 시작합니다. 대제사장들은 혹시 제자들이 시신을 훔쳐 부활을 주장할까 두려워하여 무덤을 철저히 지키게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모든 시도는 하나님의 계획 앞에 무력할 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그분은 잠시 무덤에 계시지만,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 날을 기다리며, 오늘 이 십자가 앞에 머물러야 합니다.
결론
고난주간의 금요일은 말로 다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드러난 날입니다. 예수님은 죄 없으신 분으로서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분의 죽음은 단지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구원의 문입니다.
우리는 이 날, 십자가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분의 고통을 기억하고, 그분의 사랑에 감사하며, 다시금 우리의 삶을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십자가는 사랑의 자리이며, 용서의 자리이고, 새 생명의 시작점입니다. 오늘도 이 복음을 붙들고, 우리가 받은 은혜를 깊이 묵상하며, 주님께 감사와 순종의 예배를 올려드리는 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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