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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 목요일 행적, 사랑의 극치와 순종의 완성

bibletopics 2025.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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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 목요일, 사랑의 극치와 순종의 완성

고난주간 목요일은 예수님의 공생애 마지막 밤이자, 인류를 향한 사랑이 가장 강하게 드러난 날입니다. 이 날은 단지 ‘성목요일’이라는 전통적 명칭에 머무르지 않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겸손한 섬김과 성찬을 제정하신 의미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는 십자가를 앞둔 인간 예수의 깊은 고뇌와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믿음의 절정을 보여줍니다. 이 하루의 흐름은 제자들과의 마지막 식사로 시작해 기도와 체포, 그리고 심문 직전까지 이어지며, 인간의 연약함과 하나님의 사랑이 교차하는 장면들로 가득합니다. 이 깊은 밤을 함께 묵상하며, 우리도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믿음의 자리에 서기를 원합니다.

 

마지막 만찬과 성찬의 제정 (마태복음 26:17-30, 마가복음 14:12-26, 누가복음 22:7-38, 요한복음 13:1-30)

6월절 음식 잡수시던 날,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가지셨습니다. 이 식사는 단순한 전통적 유월절 만찬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나누는 새 언약의 시작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떡을 들어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라.” 또한 잔을 가지사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언약’은 헬라어 ‘디아데케(διαθήκη)’로, 일방적으로 맺는 약속을 의미하며, 구약의 제사와 연결되어 예수님의 희생을 통해 인류와 맺는 구원의 계약을 의미합니다. ‘피’는 단지 죽음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죄 사함을 위한 희생의 본질을 의미하며, 예수님의 죽음이 모든 인류를 위한 구속의 근거가 된다는 것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만찬 중에 제자 중 하나가 자기를 팔 것을 예고하십니다. 그리고 빵 조각을 건네시며 유다에게 배신의 순간을 밝히십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경고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자신이 배신자가 될 것이라고 믿지 못합니다. 이 장면은 인간의 자기 인식의 한계와 은혜에 대한 무지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주님의 살과 피를 나누며,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는 자로서 매 순간 신실한 제자 되어야 합니다.

 

발 씻김과 사랑의 본 (요한복음 13:1-20)

요한복음은 공관복음과는 달리 성찬 제정보다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사건을 중심에 둡니다. 이 장면은 겸손과 섬김의 모범이며, 하나님이 인간에게 보이신 사랑의 실제적 표현입니다. ‘씻다’는 헬라어 ‘니프토(νίπτω)’는 손이나 발을 씻는 행위를 의미하며, 종이 주인에게 행하는 낮은 봉사의 상징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다”고 말씀하시며, 그리스도인의 제자도란 섬김으로 표현되어야 함을 강조하십니다. 제자들은 그 당시에도, 오늘날 우리도, 종종 높아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릎을 꿇고, 더러운 발을 씻기시는 자세로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다시 가르치십니다.

이 사건은 단지 윤리적 교훈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본질, 곧 겸손과 사랑으로 충만한 하나님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날 예수님처럼 다른 이의 발을 씻기는 제자의 삶을 살고 있는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진정한 리더십은 권위가 아닌, 섬김에서 나옵니다.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와 제자들의 졸음 (마태복음 26:36-46, 마가복음 14:32-42, 누가복음 22:39-46)

만찬 후, 예수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겟세마네라는 곳에 이르러 기도하십니다. 이 기도는 인류를 위한 중보기도이며, 동시에 십자가를 앞둔 깊은 내적 고통의 절규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여,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십니다.

‘잔’은 헬라어 ‘포테리온(ποτήριον)’으로, 구약에서는 종종 하나님의 진노를 상징하며,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이 잔을 마셔야만 했습니다. 이 기도는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의 절묘한 교차점입니다. 그는 참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참 인간이셨습니다. 인간으로서 그는 고통을 느끼셨고, 하나님으로서 그 뜻에 완전한 순종을 드리셨습니다.

제자들은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잠에 빠집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세 번이나 깨우시며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단지 그날 밤을 위한 말씀이 아니라, 모든 시대의 제자들에게 주시는 경고입니다. 우리는 중요한 순간마다 깨어 있어야 하며, 기도로 무장해야 합니다. 졸고 있는 제자는 결코 고난의 밤을 함께 지나갈 수 없습니다.

 

체포와 배신, 심문의 시작 (마태복음 26:47-56, 마가복음 14:43-52, 누가복음 22:47-53, 요한복음 18:1-11)

기도가 끝난 후, 유다는 군사들과 함께 등장합니다. 그는 예수님께 입을 맞추며 체포의 신호를 보냅니다. 입맞춤은 사랑과 친밀함의 상징이지만, 이 장면에서는 배신의 도구가 됩니다. 예수님은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라고 물으십니다. 이 질문은 유다의 양심을 향한 마지막 호소였습니다.

베드로는 검을 꺼내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자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에게 칼을 거두라고 하시며, “내가 아버지께 구하면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라도 지금 보내시게 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군단’은 헬라어 ‘레기온(λεγιών)’으로, 로마 군대의 편성 단위이며, 막강한 능력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자신을 내어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결국 제자들이 모두 도망가는 가운데 체포되십니다. 이 장면은 인간의 충성심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동시에 예수님의 외로움을 극대화합니다. 그는 홀로 붙잡히시고, 홀로 심문을 받으시며, 홀로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십니다.

우리는 이 밤, 예수님의 외로움 앞에서 어떤 제자로 서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주님을 따르겠다 결심했던 우리의 고백은 여전히 유효한가요? 우리는 위기의 순간에도 주님 곁을 지킬 수 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요?

 

결론

고난주간 목요일은 복음의 본질이 모두 드러나는 날입니다. 사랑과 섬김, 순종과 배신, 기도와 졸음, 권위와 낮아짐이 교차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하시며 새 언약을 선포하셨고, 발을 씻기며 섬김의 본을 보이셨으며, 겟세마네에서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순종하셨습니다.

이 하루는 단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 우리 삶에 다시 살아나야 할 복음의 메시지입니다. 우리는 이 목요일의 깊은 의미를 되새기며, 주님의 사랑에 반응하는 제자로 살아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몸과 피를 내어주셨듯이, 우리도 이웃을 위해 내어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밤이 깊을수록, 십자가가 가까워옵니다. 그러나 그 어둠 속에서도 사랑은 더욱 또렷하게 빛납니다. 주님의 사랑 앞에 무릎 꿇고, 그 뜻에 순종하며, 우리도 그 길을 함께 걸어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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