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부활 이후 삶,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리라

bibletopics 2025. 4. 14.
반응형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리라

부활절의 영광을 경험한 우리는 이제 그 감격을 넘어서 부활하신 주님의 명령 앞에 서게 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단지 한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부활의 생명이 온 땅에 선포되어야 할 복음의 시발점입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 제자들에게 주신 마지막 말씀으로, 교회가 무엇을 향해 살아가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중심으로 우리는 부활 이후의 교회, 곧 선교적 사명을 지닌 공동체로서의 교회가 어떻게 존재하고 행동해야 하는지를 함께 묵상하고자 합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선교의 출발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먼저 기다리라고 명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장 4절에서 그분은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성령의 강림을 의미하며, 이는 단지 위로 차원의 은혜가 아니라 사명을 위한 능력의 부여입니다. 본문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이라고 시작됩니다. 여기서 ‘임하시면’이라는 표현은 헬라어로 ‘에페르코마이(ἐπέρχομαι)’로, 위로부터 갑작스럽게 다가오다, 침투하다라는 뜻을 지닌 단어입니다. 이는 성령의 임재가 인간의 예측이나 제어를 초월하여 하나님 주권적으로 이뤄진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성령은 단지 감정적 뜨거움이나 특별한 체험이 아니라, 사명을 가능하게 하는 권능의 근원이십니다. ‘권능’은 헬라어 ‘뒤나미스(δύναμις)’로, 단지 물리적인 힘을 넘어서 하나님의 창조적 능력, 즉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힘을 의미합니다. 이 권능은 인간의 논리나 자원, 전략이 아닌 하나님의 임재 그 자체에서 오는 힘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선교는 언제나 성령의 충만함으로부터 시작되며, 인간의 열심이 아닌 하나님의 힘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부활을 직접 목격한 증인들이었지만, 여전히 두려움과 혼란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들이 담대한 복음의 증인으로 변화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성령의 임하심이었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이후 그들은 두려움에서 담대함으로, 숨어 있던 자들에서 나아가 세상을 향한 선포자로 바뀌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이 가져오시는 권능의 실체이며, 지금도 성도들에게 동일하게 주시는 사명에 대한 준비입니다.

우리 역시 부활의 감격 이후, 반드시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성령 없이는 어떤 선교도, 어떤 증인의 삶도 온전히 살아낼 수 없습니다. 부활 이후 교회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오직 성령을 기다리고 갈망하며 기도하는 일입니다. 성령의 권능이 임할 때, 교회는 세상을 향한 참된 증인의 공동체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증인이 되리라: 부활의 삶은 삶 전체로 복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사명은 간단합니다. “너희가 내 증인이 되리라.” 여기서 ‘증인’은 헬라어 ‘마르튀스(μάρτυς)’로, 법정에서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짐과 동시에, 그 진실을 위하여 목숨을 걸 수 있는 자라는 뜻도 내포합니다. 이는 단순히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삶으로 살아내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증인은 듣거나 배운 것을 말하는 자가 아닙니다. 자신이 보고 경험한 것을 증거하는 자입니다. 제자들이 복음을 증거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실제로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 만남은 단지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계신 주님과의 끊임없는 교제를 통해 지속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과거 사건으로서의 부활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역사하시는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증인은 단지 설교자나 선교사에게만 요구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 모든 성도는 삶의 자리에서 증인으로 부르심 받았습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이웃 가운데서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해야 합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삶의 태도, 선택, 사랑과 용서의 실천 속에서 우리는 살아 계신 예수님을 드러내야 합니다.

증인의 삶은 때로 손해와 희생을 동반합니다. 복음을 위해 오해받고 거절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르튀스라는 단어가 보여주듯, 참된 증인은 기꺼이 생명까지도 내어줄 각오가 된 사람입니다. 순교는 단지 역사 속 특별한 이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헌신의 기준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위해 얼마나 준비되어 있으며, 어떤 대가를 감수할 수 있는지 날마다 점검해야 합니다.

예루살렘에서 땅끝까지: 복음은 확장되는 생명입니다

예수님은 증인이 될 장소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십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는 지리적, 문화적, 영적 경계를 넘어 확장되어야 할 복음의 확산 경로를 보여줍니다. 단지 지리적 이동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 모든 장벽을 뚫고 확장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예루살렘’은 바로 제자들이 머물고 있던 자리였습니다. 복음은 언제나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가정, 공동체, 교회, 직장, 내가 지금 발 디디고 있는 그곳이 복음의 시작점입니다. 그리고 유대는 익숙하지만 더 넓은 지역, 사마리아는 이질적인 문화와 갈등의 땅, 땅끝은 전혀 알지 못하는 이방의 세계를 가리킵니다. 이는 복음이 가까운 이웃에서부터 전 세계로 퍼져야 함을 보여주는 구조입니다.

사마리아는 당시 유대인에게 꺼려졌던 땅이었으며, 땅끝은 이방인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의 명령은 명백합니다. 복음은 편안하고 익숙한 경계에만 머물 수 없으며, 반드시 그 경계를 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선교의 본질입니다. 복음은 담을 허물고, 경계를 넘으며, 차이를 껴안고, 전혀 다른 이들에게로 향해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는 ‘예루살렘’에만 머무르기 쉬운 경향이 있습니다. 교회 내부의 안정, 신앙의 편안함, 익숙한 관계에 안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의 명령은 계속해서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들고 유대를 향해, 사마리아를 향해, 그리고 땅끝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이 땅끝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미전도 종족과, 도시 속 소외된 이웃, 또 복음을 거부하는 문화와 사상의 자리까지도 포함합니다.

교회의 존재 목적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배와 훈련, 교제는 선교라는 목표를 위해 주어진 수단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품고 전할 책임이 있으며, 그 책임은 한 사람, 한 교회의 몫이 아니라 예수님의 몸인 전체 교회의 사명입니다.

결론

사도행전 1장 8절은 부활절 이후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분명한 방향성과 사명을 제시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능력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삶으로 증거하는 증인이 되어야 하며, 그 복음을 땅끝까지 전해야 할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 사명은 단지 목회자나 선교사만의 몫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모든 성도의 삶에 주어진 거룩한 명령입니다.

오늘 우리가 다시 부활의 감격을 마음에 새길 때, 그 감격은 곧 발걸음이 되어야 합니다. 머물지 않고 나아가야 하며, 침묵하지 않고 말해야 하며, 단지 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삶으로 증거해야 합니다. 오직 성령의 능력을 구하며, 오늘 내가 선 자리가 곧 선교지임을 고백하며, 땅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