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이후 삶, 모든 민족을 제자 삼으라
모든 민족을 제자 삼으라
부활절의 감격이 우리 심령 가운데 깊이 자리 잡았다면, 이제 우리는 그 감격을 넘어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마지막 명령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마태복음 28장 19절과 20절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직접 주신 마지막 지상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단지 어떤 사역의 방향이 아니라, 교회의 존재 이유이며, 성도의 삶의 목적을 규정하는 명령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중심으로 부활 이후 우리가 어떤 사명감을 품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깊이 있게 묵상하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라: 능동적 순종의 시작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러므로 너희는 가라"고 명령하십니다. 이 말씀은 헬라어 원어로 보면 ‘포레우세스데(πορευθέντες)’로, 이는 명령법의 형태라기보다는 현재 분사형으로 ‘가면서’ 또는 ‘가는 도중에’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는 복음 전파가 어떤 특정한 장소나 행위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 속에서 끊임없이 이어져야 함을 의미합니다.
‘가라’는 명령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시는 사명적 출발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후 그 자리에 머무를 수 없습니다. 마치 마태복음 28장 앞부분에서 무덤을 찾은 여인들이 부활 소식을 듣고 달려 나아갔던 것처럼, 우리도 이제는 그 생명의 소식을 들고 세상 속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부활은 단지 개인적 위로가 아니라, 공적 선포의 시작점입니다.
예수님의 이 명령은 당시 유대 중심의 좁은 세계관을 깨고, 모든 민족을 향한 확장된 시선을 요구합니다. 복음은 민족과 인종, 문화와 언어, 지리적 경계를 넘어 모든 사람에게 전해져야 합니다. 여기서 ‘모든 민족’은 헬라어 ‘판타 타 에스네(πάντα τὰ ἔθνη)’로, 단순히 국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민족 집단과 사람들의 공동체 전체를 가리킵니다. 이는 복음이 특정 민족의 전유물이 아니라, 인류 전체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임을 보여줍니다.
오늘날 우리의 사명도 같습니다. 우리는 부활의 증인으로서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또 하나님이 부르시는 곳에서 복음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가는 자만이 순종하는 자입니다. 복음은 정적인 정보가 아니라, 역동적인 생명이기 때문에 반드시 움직이고 흘러야 하며, 멈추지 않고 전해져야 합니다.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세례를 베풀고: 관계와 헌신의 제자도
예수님의 명령은 단순히 가는 것에 그치지 않고,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라는 목적을 분명히 밝히십니다. 여기서 ‘제자로 삼다’는 헬라어 ‘마쎄튜오(μαθητεύω)’는 ‘가르쳐서 따르게 하다’, 즉 단순한 지식의 전달이 아닌 삶의 방식과 가치관까지 변화시키는 깊은 영향을 의미합니다. 제자는 단지 가르침을 받는 자가 아니라, 스승의 삶을 따르고 닮아가는 존재입니다.
이 ‘제자 삼음’은 단기적인 결과나 수치가 아니라, 관계적이고 지속적인 헌신을 전제로 합니다. 제자훈련은 교회의 프로그램이 아니라, 성도의 삶의 방식입니다. 성도는 단지 주일에 예배를 드리는 자가 아니라, 매일의 삶 속에서 예수님을 따르고, 그 말씀을 배우고, 순종하는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이 제자 삼는 사역의 시작은 세례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라는 구절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신앙의 입문을 말합니다. 세례는 단지 물의식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사는 연합의 고백이며, 새로운 삶의 시작입니다. 이는 단지 신앙의 ‘가입’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의 정체성 획득입니다.
‘세례’는 헬라어로 ‘밥티조(βαπτίζω)’로, ‘잠기다’, ‘완전히 빠지다’는 의미를 지니며, 이는 그리스도 안으로 완전히 들어가는 전적 헌신을 상징합니다. 세례는 단지 외적인 표시가 아니라, 삶 전체를 예수님께 드리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며, 그 이후 제자의 삶을 살아갈 준비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제자 삼는 일은 깊은 동행과 책임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할 뿐 아니라, 함께 걸으며 양육하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도록 돕는 사명을 맡고 있습니다.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진리를 삶으로 살아내는 사역
예수님은 제자 삼는 사역의 핵심을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로 요약하십니다. 여기서 ‘가르쳐’는 단지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본을 보여주며 실천하게 하는 교육입니다. 헬라어 ‘디다스코(διδάσκω)’는 지속적인 가르침과 훈련을 내포하며, 이는 관계적 맥락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지키게 하라’는 말은 헬라어 ‘테레인(τηρεῖν)’으로, 단지 기억하는 수준이 아니라, 실제로 실천하고 삶 속에 적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참된 제자도는 듣고 아는 데서 끝나지 않고, 순종과 실천을 통해 삶으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의 명령은 단지 이론적 동의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행위를 요구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모든 내용은 사랑과 은혜, 진리와 공의, 용서와 화해, 겸손과 섬김, 믿음과 순종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 모든 가르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안에서 완성되었으며, 이제 제자 된 자들은 그 모든 진리를 삶으로 살아내야 합니다. 교회의 역할은 단지 말씀을 전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이 그 말씀을 실천하고 지켜가는 삶을 살도록 돕는 것에 있습니다.
현대 교회는 정보는 넘치지만 실천이 부족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많이 들었고, 성경도 많이 알지만, 그 말씀을 실제 삶에서 얼마나 실천하고 있는지는 날마다 돌아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예수님의 명령은 ‘지키게 하라’입니다. 단지 가르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함께 지켜내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부활 이후 교회의 진정한 모습이며, 선교적 삶의 열매입니다.
결론
마태복음 28장 19-20절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교회에 주신 가장 위대한 명령이며, 동시에 가장 무거운 책임입니다. 우리는 부활의 감격을 넘어서, 이제 부활하신 주님의 명령 앞에 설 때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라”는 명령은 우리를 세상 속으로 파송하며,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는 사명은 우리 삶의 방향과 목적을 규정합니다. 그리고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명령은 복음이 삶 전체로 확장되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은 마지막에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이 약속은 이 사명을 결코 혼자 감당하지 않도록 하시는 은혜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혼자 가지 않으며,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 약속은 선교의 길에서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히 나아가라는 격려이며, 끝까지 믿음으로 순종하라는 요청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가 부활의 생명을 품고, 그 명령에 응답하며, 제자 삼는 선교적 공동체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 어디에 있든지, 그곳에서 복음이 전해지고, 삶으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제자의 길을 걸어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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