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21:18-22 묵상
열매 없는 나무 아래서
사랑하는 여러분, 고난주간의 이른 아침, 예수님의 발걸음은 다시금 예루살렘을 향하고 있습니다. 전날 성전에서 거룩한 정화를 행하셨던 주님께서 이제는 한 무화과나무 앞에 멈춰 서십니다. 마태복음 21장 18절부터 22절까지의 이 짧은 본문은 그 분량과 달리, 매우 깊은 영적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겉으론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는 기이한 장면이지만, 실은 이스라엘의 영적 실상을 고발하는 예언이자, 고난주간의 한가운데서 십자가로 이어지는 구속의 선포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열매 없는 신앙의 공허함, 그리고 진정한 믿음의 본질을 함께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잎만 무성한 신앙 (마 21:18-19)
이른 아침, 예수님께서 시장하셨습니다. 길 가에서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보시고 가까이 가셨지만, 잎사귀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나무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서 열매가 맺히지 아니하리라"(마 21:19). 그 즉시 무화과나무는 마르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장면은 단순한 배고픔의 해프닝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이 행위는 구약의 선지자들이 행하던 상징적 행동, 곧 '행위 예언'에 해당하는 장면입니다.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 더 구체적으로는 종교지도자들의 형식적 신앙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성전은 여전히 존재하고, 제사는 계속되며, 종교적 의식은 활발하지만, 그 안에는 진정한 경외와 회개의 열매가 없었던 것입니다.
고난주간에 이 말씀은 더욱 날카롭게 다가옵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 열매 없는 종교를 향해 심판의 말씀을 하십니다. 오늘날 우리도 이 말씀 앞에서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잎만 무성한 나무처럼 외형만 무성한 것인가, 아니면 참된 회개와 사랑, 순종의 열매가 맺히고 있는가. 주님은 지금도 우리 안의 열매를 찾고 계십니다.
마른 가지의 경고 (마 21:19)
무화과나무는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에 즉시 마르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신약에서 보기 드문, 그야말로 급작스럽고 직접적인 심판의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이는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며, 그만큼 긴급하고 중요한 메시지를 품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여기엔 단지 경고가 아닌, 주님의 아픔이 담겨 있습니다. 회복을 기다리던 나무가, 결국 열매를 맺지 못하고 말라버릴 때의 안타까움 말입니다. 주님은 정죄하시기 위해 이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가 임박했음을, 구속의 결정적인 시점이 도래했음을 알리기 위해 선언하신 것입니다.
고난주간은 바로 그 하나님의 때가 도래한 주간입니다. 은혜는 무한하지만, 기회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열매 맺지 않는 나무처럼, 우리가 경건의 모양만 가지고 본질을 잃어버릴 때, 신앙은 말라버리고 맙니다. 그리하여 주님은 지금도 우리 심령 가운데 외치십니다. "이제부터는 열매를 맺어라."
믿음이 산을 옮긴다 (마 21:20-21)
제자들은 이 기이한 장면을 보고 놀라며 묻습니다.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마 21:20)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 것이다"(마 21:21)
여기서 예수님은 열매 없는 나무와 대조되는, 진실한 믿음의 능력을 말씀하십니다. 믿음이란 단지 생각이나 감정이 아니라, 실체를 움직이는 영적 동력입니다. 믿음은 산도 옮기고, 절망을 소망으로,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는 힘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고난주간에 하셨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특별한 울림을 줍니다. 곧 십자가를 지실 주님께서, 믿음의 능력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죽음이 패배가 아니라, 믿음으로 완성될 승리임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그 믿음을 가지라고 권면하십니다.
구하는 자에게 주시는 은혜 (마 21:22)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마 21:22). 이 구절은 단지 기도의 응답에 대한 약속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믿음으로 드리는 삶 전체에 대한 약속입니다.
주님은 잎만 무성한 신앙에서 벗어나, 참된 열매를 맺는 신앙으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그 열매는 기도로부터 맺힙니다. 믿고 구하는 기도, 하나님의 뜻에 나를 맡기는 기도,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기도—그 기도가 우리의 삶에 생명을 불어넣고, 메마른 나무에 다시금 새순이 돋게 만듭니다.
고난주간은 기도의 시간입니다. 십자가 앞에서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다시 돌아보고, 믿음의 뿌리를 깊이 내릴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합니다. 주님의 말씀처럼, 믿고 구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그 응답은 때로 나무를 살리기도 하고, 때로는 말리기도 하며, 결국 우리를 참된 생명으로 이끌어 가십니다.
마무리 묵상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주님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본문을 통해, 고난주간의 깊은 의미를 다시금 되새깁니다. 고난주간은 심판의 예언과 회복의 소망이 교차하는 시간입니다. 잎만 무성한 신앙에 경종을 울리시며, 믿음의 능력을 회복하라고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우리가 듣습니다.
열매 없는 나무 아래에 머무르지 맙시다. 외형적인 경건, 습관적인 신앙에 안주하지 맙시다. 지금도 주님은 우리의 삶에서 열매를 찾고 계십니다. 순종의 열매, 사랑의 열매, 믿음의 열매를 맺는 한 주간이 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무화과나무가 마른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은 다시금 새 일을 시작하실 수 있습니다. 믿고 구하십시오. 고난의 골짜기에서도, 십자가의 어둠 속에서도, 믿음은 반드시 꽃을 피우고, 생명을 맺습니다. 이것이 고난주간의 영광이며, 십자가 이후의 부활을 향한 소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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