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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1:23-32 묵상

bibletopics 2025.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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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은 말보다 깊다

사랑하는 여러분, 고난주간의 하루하루가 깊어질수록, 예수님의 말씀은 점점 더 명확하고 날카로워집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할 본문은 마태복음 21장 23절부터 32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던 예수님께 종교 지도자들이 다가와 질문합니다. "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가? 그 권위는 누구에게서 받은 것인가?"(마 21:23) 이 질문은 단지 논쟁을 위한 도발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십자가로 몰고 가는 과정 속에서 벌어진 가장 본질적인 신학적 충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반문과 비유로 그들의 속마음을 꿰뚫으십니다. 오늘 이 본문은 단지 당시 종교 지도자들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내면을 향해 던져지는 거룩한 질문이 됩니다.

누구의 권위인가 (마 21:23-27)

예수님께 다가온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자신들이 성전의 권위를 대표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 권위란 직분과 전통, 그리고 외형적 권세에서 비롯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한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의 권위는 하늘로부터, 곧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권위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반문하십니다. "요한의 세례가 어디로부터 왔느냐?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마 21:25)

이 질문 앞에서 그들은 당황합니다. 하늘로부터라 하면 왜 믿지 않았느냐고 책망 받을 것이고, 사람으로부터라 하면 무리들이 두려운 겁니다. 그들의 계산은 믿음이 아니라 체면과 정치였습니다. 결국 그들은 "모르겠다"고 답합니다(마 21:27). 이 대답은 무지의 고백이 아니라, 진리를 외면하는 의도적 회피입니다.

예수님은 권위에 대한 진짜 질문을 우리에게도 던지십니다. 우리의 신앙은 과연 누구의 권위 위에 세워져 있는가. 세상의 인정을 바라는가, 아니면 하늘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가. 고난주간의 이 시점에서, 우리는 주님의 권위를 다시 고백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 앞에 무릎 꿇는 것이 진정한 믿음의 시작입니다.

두 아들의 비유, 순종의 무게 (마 21:28-30)

이어서 예수님은 한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맏아들에게 말합니다.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그는 대답합니다. "가겠나이다" 하였으나 가지 않았습니다. 둘째 아들에게도 같은 말씀이 있었고, 그는 처음엔 "싫습니다" 하였으나, 나중에 뉘우치고 갔습니다(마 21:28-30).

이 비유는 단순한 행동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음의 진정성, 회개의 깊이, 그리고 순종의 무게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맏아들의 말은 경건해 보였지만, 그의 행동은 공허했습니다. 둘째 아들은 거칠고 솔직했지만, 결국 마음을 돌이켜 순종했습니다.

고난주간은 회개의 주간입니다. 우리는 모두 맏아들과 같습니다. 입술로는 신앙을 고백하면서도, 실제 삶에서는 포도원으로 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포도원으로 향하는 그 걸음을 원하십니다. 회개의 눈물로 시작된 한 걸음이, 순종이라는 열매로 이어지기를 주님은 바라보고 계십니다.

의인의 가면, 죄인의 눈물 (마 21:31)

예수님은 비유를 마치신 뒤 이렇게 물으십니다. "이 둘 중에 누가 아버지의 뜻을 행하였느냐?" 그들은 대답합니다.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마 21:31)

이 선언은 당시 종교 지도자들에게는 충격적인 말씀이었습니다. 스스로 의롭다 여기던 자들이, 오히려 배척당하고, 세상에서 죄인이라 불리던 자들이 천국의 문에 먼저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왜입니까? 세리들과 창기들은 회개했고,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말로는 신앙을 말했으나, 실제로는 하나님의 뜻을 저버렸습니다.

고난주간에 이 말씀이 우리에게 들려올 때, 우리는 내면을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는 누구인가. 회개하는 죄인인가, 스스로 의롭다 여기는 자인가. 주님은 지금도 마음이 상한 자, 정직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자를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눈물과 뉘우침으로 들어가는 자리입니다.

요한의 부르짖음, 그리고 대답하지 않는 심령 (마 21:32)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요한에 대해 다시 언급하십니다.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기들은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마 21:32)

요한의 외침은 회개의 촉구였습니다. 그러나 종교 지도자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귀는 열려 있었지만, 심령은 닫혀 있었습니다. 고난주간을 지나는 우리에게도, 요한의 외침이 다시 들려오고 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이 외침은 과거의 소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오늘도 우리 심령을 두드리는 하나님의 간절한 초대입니다.

믿지 않은 자보다 더 슬픈 존재는, 보고도 끝내 믿지 않는 자입니다. 고난주간은 단지 감정의 고양이 아니라, 결단의 주간입니다. 우리도 요한의 외침에 응답하여, 돌이키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마무리 묵상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은 고난주간의 흐름 속에서 참된 믿음이 무엇인지, 순종이 무엇인지를 다시 묻고 있습니다. 말보다 행동이 중요하고, 외형보다 마음이 중요하며, 회개는 언제나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첫 걸음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물으십니다. "너는 누구의 권위 아래 살아가느냐?" "너는 아버지의 말씀 앞에 순종하고 있느냐?" 고난주간은 이 물음에 답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침묵하지 말고, 회피하지 말고, 두 아들 중 둘째처럼, 뉘우치고 돌아서서 주님의 포도원으로 걸어갑시다.

그 길 끝에는 십자가가 있고, 그 너머엔 부활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님의 권위 앞에 순종함으로, 우리는 다시금 하나님의 자녀로 설 수 있습니다. 말로가 아니라, 삶으로 믿음을 증명하는 이 한 주간이 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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