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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1:1-11 묵상

bibletopics 2025.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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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나무 가지 아래, 구속의 왕이 오신다

고난주간이 시작되면 우리는 종려주일로 그 첫 걸음을 내딛게 됩니다. 사람들은 나뭇가지를 흔들며 외칩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마 21:9) 그러나 이 찬양의 함성은 머지않아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외침으로 뒤바뀌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묵상할 본문은 마태복음 21장 1절부터 11절까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장면입니다. 이 본문은 단순한 입성이 아니라, 구속사의 정점으로 향하는 예수님의 의도적이고 거룩한 발걸음입니다. 주님의 이 마지막 여정은 우연이 아닌 예언의 성취이며, 단순한 방문이 아닌 구원의 문을 여는 입성입니다.

감람산 자락에서 들려오는 조용한 전복 (마 21:1-3)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러 감람산 벳바게에 다다르시자 제자 둘을 보내어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거기에서 나귀 한 마리와 나귀 새끼가 함께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너라."(마 21:2) 이 명령은 단순한 교통수단의 요청이 아닙니다. 이는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이르시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를 타셨도다."(스가랴 9:9 참조)

이 순간은 왕의 권위와 종의 겸손이 충돌하는 성스러운 역설입니다. 세상 왕은 말을 타고 전리품을 끌고 입성하지만, 우리 주님은 나귀를 타고 눈물과 고통의 골짜기로 들어가십니다. 감람산 자락에서 들려오는 이 조용한 명령은, 세상의 질서를 뒤집는 거룩한 전복 선언입니다. 고난주간은 이 전복의 주간입니다. 강함이 약함에 무릎 꿇고, 높음이 낮음으로 임하며, 생명이 죽음을 통과하여 완성되는 신비한 길입니다.

예언이 이루어지다 (마 21:4-5)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이르시되,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매는 짐승의 새끼를 타셨도다 하였느니라."(마 21:4-5)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이미 오래전 예언된 계획이었습니다. 그분은 결코 우연히 그 길을 선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향한 구속은 충동적인 결단이 아닌, 오랜 약속의 성취이며 하나님의 구속 경륜입니다. 이 말씀은 고난주간이 단순한 비극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생생히 살아 움직이는 시간임을 보여줍니다.

왕이신 그분은 말을 탄 승전 장수가 아닌, 나귀를 탄 고난의 종으로 오셨습니다. 이 겸손은 패배가 아닌 전략이며, 순종은 두려움이 아닌 사랑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오셨고, 그 낮아짐은 십자가 위에서 절정을 이루게 됩니다.

호산나의 외침 속에 감춰진 그림자 (마 21:6-9)

제자들은 예수님의 명령대로 나귀와 그 새끼를 끌고 와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위에 펴 드립니다. 많은 무리도 자기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어떤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깔며 외칩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마 21:9)

이 외침은 기쁨의 노래이지만, 동시에 무지의 소리이기도 했습니다. 백성들은 예수님을 다윗의 왕조를 회복할 정치적 메시아로 기대했습니다. 그들의 호산나는 구원을 외치는 소리였지만, 그 구원의 의미는 땅의 왕국에 머물러 있었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영원한 왕국을 세우기 위해 오셨고, 그 왕국은 십자가라는 문을 지나야만 열리는 나라였습니다.

고난주간의 역설은 여기에 있습니다. 환호는 배신으로 바뀌고, 찬양은 조롱이 되며, 영광의 기대는 고통의 현실로 부딪힙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참된 구원이 자라납니다. 참된 메시아는 군림하는 자가 아니라 섬기는 자이며, 자신을 내어줌으로 왕좌에 오르시는 분입니다.

성 안의 혼란과 물음 (마 21:10-11)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자 온 성이 소동합니다. 사람들이 묻습니다. "이는 누구냐?" 무리는 대답합니다.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마 21:10-11)

이 장면은 고난주간의 영적 긴장감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분명 입성하셨지만, 그분을 알아보는 눈은 많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분을 선지자로는 보았지만, 메시아로는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성전으로, 곧 자신의 죽음이 완성될 중심부로 들어서십니다. 그러나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도성, 외면하는 무리들, 침묵하는 제자들이 함께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구원의 문 앞에서 흔들리는 영혼들의 상징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 무리 중 하나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분명 우리 곁에 입성하셨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분이 누구신지 묻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마무리 묵상

사랑하는 여러분, 고난주간의 첫날 우리는 예수님의 입성을 바라봅니다. 그분은 평화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나귀를 타고, 겉옷 위를 지나, 환호와 오해 속을 지나, 성전의 중심을 향해 걸어가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길 끝에서 십자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도 함께 이 길을 걸어야 합니다. 겉옷을 벗어드릴 수 있는 헌신, 나뭇가지를 흔드는 찬양 그 너머에, 진정한 회개와 믿음으로 주님을 맞이합시다. 고난주간은 단지 기억의 시간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 가운데 임하시는 주님을 알아보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구속의 왕이 오십니다.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눈물로, 사랑으로, 피 흘림으로. 그분의 발자국이 우리의 심령 위를 지나가실 때, 우리가 준비된 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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