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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1:12-17 묵상

bibletopics 2025.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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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분노, 사랑의 정화

사랑하는 여러분, 고난주간의 두 번째 날에 우리는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보이신 놀라운 행동, 성전 정화 사건을 마주하게 됩니다. 마태복음 21장 12절부터 17절까지의 이 본문은 예수님의 성품 중 우리가 자주 간과하는 단호함과 거룩한 분노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 분노는 파괴를 위한 것이 아니라, 회복을 위한 것이며, 심판이 아니라 구원을 위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장면을 통해 예수님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흐르는 사랑의 긴장을 마주하고자 합니다. 그 사랑은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는 길목에서, 우리가 잊은 거룩을 다시 불러내고 있습니다.

상을 뒤엎으신 이유 (마 21:12)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십니다(마 21:12). 이 장면은 말 그대로 성전 안에서의 일대 소동입니다. 한 사람의 행동이 온 공간을 뒤흔들고, 익숙했던 일상이 산산이 부서지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이 행동은 단순한 분노의 분출이 아닙니다. 이것은 거룩한 정화의 행위입니다.

성전은 기도하는 집이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머무는 곳, 백성들이 죄를 씻고 은혜를 입는 장소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거룩한 공간이 탐욕과 이익의 소리로 가득 찼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가, 물질을 숭배하는 시장터로 변질되어 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부조리를 참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사랑하시기에 분노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분노는 절망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아직도 회복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사랑의 표현이었기 때문입니다.

기록된 말씀을 회복하시다 (마 21:13)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마 21:13). 여기서 예수님은 이사야서 56장과 예레미야서 7장의 말씀을 인용하고 계십니다. 성전의 본래 정체성을 상기시키며, 그 자리를 회복하시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집'이라는 표현은 단순히 기도 소리가 울려 퍼지는 장소라는 의미를 넘어섭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만남이 일어나는 자리요, 하늘과 땅이 맞닿는 성소입니다. 그러나 그 거룩한 공간이 거래의 장소로 타락했을 때, 성전은 그 빛을 잃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그 어둠을 걷어내고 다시 빛을 비추십니다. 고난주간은 바로 이 회복의 주간입니다. 겉으로는 분노 같지만, 사실은 우리를 원래의 자리로, 진정한 예배의 중심으로 이끄시는 회복의 시간입니다.

병든 자들이 다가오다 (마 21:14)

이 소동이 끝난 후, 성전으로 병든 자들이 몰려옵니다. 맹인과 저는 자들이 예수께 나오고, 그분은 그들을 고치십니다(마 21:14). 여기서 우리는 신비한 반전을 보게 됩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뒤엎어진 상과 튀어나간 상인들로 가득했던 성전에, 이제는 고통받는 이들이 들어옵니다. 고난주간은 언제나 이렇게 전복적인 흐름을 가집니다. 타락한 자는 물러가고, 고통받는 자는 들어오는 시간입니다.

성전은 다시금 본래의 기능을 회복합니다. 고통을 짊어진 자들이 하나님의 은혜 앞에 서고, 치유의 손길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분노로 시작하셔서, 사랑으로 마무리하십니다. 이 치유는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구속의 복음이 실현되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성전 한복판에서, 병든 우리 인생을 일으켜 세우시는 참된 메시아이십니다.

아이들의 찬송, 그리고 거절당한 메시아 (마 21:15-17)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이 광경을 보고 분노합니다. 아이들이 외치는 찬송,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마 21:15), 그 순수한 고백 앞에서 그들의 종교적 자존심은 상처를 입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께 묻습니다. "이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느냐?" 예수님은 대답하십니다. "어린 아이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마 21:16)

여기서 우리는 고난주간의 중심 주제를 다시 만나게 됩니다. 세상의 중심에서 거절당하는 메시아, 그러나 약하고 어린 자들의 입술에서 높임을 받는 메시아. 예수님은 어른들의 입에서는 거부당하지만, 아이들의 입에서는 찬송을 받으십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의 역설입니다. 인간의 눈에는 무능해 보이는 메시아가, 하나님의 눈에는 영광의 왕으로 임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날 예수님은 성전을 떠나 감람산 아래 베다니로 가십니다(마 21:17). 그 떠남은 단순한 퇴장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루살렘 성전이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했음을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구원의 성소가 거절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외면당하면서도 묵묵히 십자가의 길을 향해 나아가십니다. 이것이 고난주간입니다. 찬송과 거절, 회복과 심판이 얽힌 복합적인 구속의 여정입니다.

마무리 묵상

사랑하는 여러분, 고난주간의 둘째 날, 성전에서의 이 사건은 단지 분노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사랑의 회복 이야기이며, 거룩의 재구성입니다. 예수님은 성전을 깨뜨리심으로 우리 안에 새로운 성전을 세우십니다. 그 성전은 건물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는 심령 안에 세워지는 하나님의 거처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묻습니다. 내 안의 성전은 어떠한가. 주님이 들어오시면 뒤엎을 것밖에 남지 않은 시장터가 되어 있진 않은가. 주님의 거룩한 발걸음이 우리 안을 지나갈 때, 우리는 그분의 분노 앞에서 무너지며, 그분의 치유 앞에서 일어서야 합니다.

성전에서 일어난 이 정화는 단지 그 당시의 일이 아닙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 안에 오셔서 말씀하십니다.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그리고 우리는 다시금 무릎을 꿇습니다. 주여, 내 삶을 당신의 성전으로 정화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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