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묵상, 마 25:1, 준비된 등불
기름 준비된 등불은 꺼지지 않는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천국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 나라는 열 처녀가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마 25:1) 이 비유는 종말론적인 긴장감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깨어 있어야 하는지를 깊이 있게 보여줍니다. 고난주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말씀은 단지 미래를 대비하라는 교훈이 아니라, 지금 여기를 믿음으로 살아내라는 주님의 간절한 요청입니다.
열 명 모두 등을 들었지만
마태복음 25장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예수님은 천국을 혼인 잔치로 비유하셨습니다. 유대 혼인 풍습에서는 신랑이 신부의 집으로 와서 잔치를 열며, 그 앞에 신부의 들러리인 처녀들이 등불을 들고 신랑을 맞이했습니다. 이들은 모두 신랑을 기다리는 자들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오늘날의 신앙 공동체,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성도를 상징합니다. 그들은 모두 등을 들고 나갔습니다. 다시 말해, 외적으로는 모두 준비된 신자들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열 명을 ‘슬기로운 자’와 ‘미련한 자’로 나누십니다. 헬라어 원문에서 ‘슬기로운’은 'φρόνιμοι phronimoi', 곧 지혜롭고 사려 깊은 이들을 의미합니다. 반대로 ‘미련한’은 'μωραί mōrai',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겉만 남은 자들을 가리킵니다. 열 명 모두 등이 있었고, 모두 신랑을 기다렸지만, 그들 가운데 결정적인 차이는 ‘기름’에 있었습니다.
기름은 당시의 등불에 필수적인 요소였습니다. 겉으로는 등을 들고 있지만, 기름이 없으면 불은 꺼지게 되어 있습니다. 기름은 무엇을 상징할까요? 그것은 준비된 믿음, 인내하는 마음, 그리고 무엇보다 성령의 역사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 22절에서 성령의 열매를 말하며, 그것이 삶 속에서 드러나는 참된 신앙의 증거임을 강조합니다. 기름은 단순히 감정이나 결단이 아니라, 꾸준히 쌓아온 영적 습관이자, 하나님과 맺은 관계의 깊이입니다.
이 비유에서 무서운 사실은, 열 명 중 다섯이 기름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들도 등불을 들고 있었지만, 그 등불은 곧 꺼질 수밖에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들은 외적으로는 신실해 보였지만, 실제로는 준비되지 않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신랑을 맞으러 나간 것은 사실이지만, 실상은 신랑을 기다릴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신랑은 더디 오고, 밤은 깊어지고
신랑이 더디 오자 모두 졸며 잤습니다. 슬기로운 자도, 미련한 자도 모두 잠들었습니다. 이 장면은 매우 인간적인 모습입니다. 우리는 모두 지칩니다. 인생의 고난, 신앙의 긴 여정 속에서 졸음이 찾아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넘어질 수 있고, 피곤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계십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 상황 속에서도 ‘기름을 준비한 자’는 깨어 있을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깨어 있음은 눈을 뜨고 있는 상태가 아니라, 준비된 상태를 말합니다.
밤중에 외침이 들립니다.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이 한 마디에 모든 것이 갈립니다. 미련한 처녀들은 급히 등을 정비하려 하지만, 그들에게는 기름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슬기로운 자들에게 기름을 나눠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말합니다. “우리와 너희가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그들은 이기적인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준비는 타인에게서 빌릴 수 없는 것입니다. 믿음은 대리할 수 없습니다. 성령의 기름은 오직 자신의 내면에서 공급되어야 합니다.
미련한 처녀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 신랑이 도착합니다. 준비된 자들은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힙니다. 얼마나 슬프고도 충격적인 장면입니까. 기름을 가지러 갔다는 사실은, 그들이 신랑을 포기한 것이 아님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때는 늦었습니다. 은혜의 문은 언제까지나 열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주간은 바로 이 시간의 유한함을 우리에게 절실히 가르쳐 줍니다. 은혜는 값없지만, 값싼 것이 아닙니다. 기름 없는 등불로는, 결코 주님을 맞이할 수 없습니다.
지금은 기름을 채울 시간
이 비유는 단순히 ‘깨어 있으라’는 경고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지금 준비하라는 초대입니다. 마태복음 25장 13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는 신랑이 언제 올지 모릅니다. 하지만 반드시 오신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합니다. 고난주간은 우리에게 기름을 채우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말씀과 기도로, 회개와 감사로, 섬김과 헌신으로 우리의 등불에 다시 기름을 부어야 할 시간입니다. 신앙은 준비 없는 감정이 아니라, 끊임없는 영적 훈련입니다. 마치 운동선수가 경기 전 날마다 훈련을 반복하듯, 우리의 믿음도 일상의 훈련 속에서 준비되어야 합니다. 그 준비가 곧 기름입니다.
요즘 우리는 너무 쉽게 피곤해지고, 너무 빠르게 신앙을 포기합니다. 세상의 소음은 우리의 영혼을 산만하게 만들고, 때로는 잠시 불을 끄고 싶은 유혹을 느낍니다. 그러나 그 밤은 생각보다 길지 않습니다. 신랑이 오는 소리는 예고 없이 들릴 것이고, 그날에는 기름을 채울 시간이 없습니다. 준비는 그날을 위한 오늘의 행위입니다.
우리 모두는 불 켠 등불을 들고 신랑을 맞이할 자들입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그 등불 안에 기름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외적인 준비보다, 내면의 준비를 보십니다. 내가 누구보다 오래 교회에 다녔는가, 얼마나 많은 봉사를 했는가가 아니라, 지금 내 안에 성령의 기름이 타오르고 있는가를 물으십니다.
결론
고난주간, 십자가를 향한 예수님의 길은 깊은 밤의 여정이었습니다. 그 길 끝에서 우리는 신랑 되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분을 만나기 위해 우리는 등을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등을 드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기름을 채워야 합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미리 준비한 기름으로 인해 신랑을 맞이했습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는 등불이 있었지만, 기름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문 앞까지 갔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단지 이야기 속의 비극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현실에 대한 주님의 경고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은 기름을 채울 때입니다. 아직 은혜의 시간이 남아 있을 때, 우리는 깨어 기도하고, 말씀을 붙들고,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예수님은 반드시 오십니다. 그날 우리 등이 꺼지지 않도록, 지금 우리의 내면을 살피고 성령의 기름으로 채우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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