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묵상, 부활의 아침
부활의 아침: 고난을 넘어선 생명의 시작
마태복음 28:1-10은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전하는 본문으로, 안식일이 지나고 주간 첫날 새벽에 무덤을 찾아간 마리아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부활의 소식을 전합니다. 빈 무덤과 살아나신 주님의 만남은 십자가의 고난을 지나 부활의 영광으로 이어지는 구속사의 절정을 보여줍니다. 이 본문은 절망 속에 찾아온 소망, 죽음을 이기신 생명의 복음, 그리고 모든 두려움을 이기는 기쁨의 시작을 선포합니다.
무덤을 찾은 여인들의 헌신
안식일이 지나고 주간 첫날, 곧 오늘날로 치면 주일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예수님의 무덤을 찾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과 장례를 지켜본 이들로, 슬픔과 절망 가운데서도 여전히 예수님을 향한 사랑과 헌신을 품고 있었던 제자들이었습니다. 무덤을 찾은 이들의 이른 새벽 행보는 신앙의 충성과 사랑의 표현이자, 아직 부활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주님 곁에 머물고자 한 인간적인 애틋함이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남성 제자들은 대부분 흩어져 있었던 반면, 여성 제자들은 끝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의 헌신은 결코 작지 않았으며, 하나님은 그 진심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첫 증인을 이 여성들에게 맡기십니다. 이는 당시 여성의 증언이 법적 효력이 없던 시대적 배경 속에서, 하나님께서 인간의 관습보다 진실을 먼저 택하신다는 복음의 진리를 보여줍니다.
이 여인들의 행동은 신앙이란 머리로 이해하기 전에, 마음으로 반응하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부활의 소식을 기대한 것이 아니라, 죽은 주님을 애도하기 위해 무덤을 찾았지만, 오히려 가장 복된 소식을 가장 먼저 듣는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이는 우리도 진심으로 주님을 찾고자 할 때, 예상하지 못한 하나님의 응답과 기쁨을 경험할 수 있음을 말해줍니다.
천사의 선포와 빈 무덤의 증거
갑자기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옵니다. 이는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을 상징하는 사건입니다. 성경에서 지진은 종종 하나님의 임재나 심판, 새로운 국면의 전환을 상징하는 표징으로 등장합니다. 출애굽기에서 시내산이 진동했고, 사도행전에서는 옥문이 열릴 때 땅이 흔들렸습니다. 이 부활의 새벽에도 지진은 단순한 놀라움이 아닌, 하나님의 역사적 개입의 상징이었습니다.
천사는 무덤의 돌을 굴리고 그 위에 앉아 있습니다. 이는 단지 무덤을 여는 행위가 아니라,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는 상징적인 행위입니다. 이 돌은 단순한 돌이 아니라, 인간이 생각한 절망과 끝, 죽음이라는 개념 그 자체입니다. 천사가 그 돌을 굴려낸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죽음이 예수님을 붙잡을 수 없음을, 또한 우리가 두려워할 이유가 사라졌음을 보여주는 신적 선언입니다.
천사의 얼굴은 번개 같고 옷은 눈처럼 희다고 기록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는 존재로서의 천사의 위엄과 순결을 묘사한 표현입니다. 이 영광의 현현 앞에 경비병들은 무서워 떨며 죽은 사람처럼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와는 대조적으로 천사는 여인들에게 "무서워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이는 부활의 복음이 두려움이 아닌 위로와 희망으로 주어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천사는 이어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살아나셨다고 선포하며, 무덤 안을 직접 확인해보라고 합니다. "여기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는 천사의 말은 부활의 사실성을 강조하기 위한 증거 제시입니다. 이는 복음이 단지 감정이나 상징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임을 선포하는 증언입니다. 그리고 천사는 여인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자들에게 알리라고 명령합니다. 그가 갈릴리로 먼저 가실 것이며, 그곳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십니다.
이 모든 장면은 부활의 복음이 비밀이 아닌 선포되어야 할 진리임을 강조합니다. 죽음을 이기신 주님의 승리는 이제 제자들에게 전해져야 하고, 그 복음은 세상 끝까지 퍼져야 할 소식입니다. 여인들은 기쁨과 두려움을 안고 달려가며, 말씀에 순종하는 자로서 복음의 첫 전달자가 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첫 인사
여인들이 급히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이 사실을 전하러 가는 길에, 예수님께서 친히 그들을 만나십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평안하냐"고 인사하십니다. 헬라어 원문에서 이 인사는 chairete로, "기뻐하라", "안녕하냐"라는 뜻을 함께 가지는 단어입니다. 단순한 안부 인사가 아닌, 부활의 기쁨을 나누는 축복의 말씀입니다. 이 말은 이제 슬픔은 끝났고, 새로운 기쁨의 시대가 열렸음을 선포하는 주님의 선언입니다.
여인들은 예수님의 발을 붙잡고 경배합니다. 이는 그분이 단지 환상이나 영적 존재가 아닌, 실제로 부활하신 몸으로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또 예배는 오직 하나님께만 드리는 행위이므로, 예수님의 신성을 드러내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그들의 경배는 단순한 존경이 아닌, 부활의 주님 앞에 엎드린 신앙 고백이며, 예수님을 진정한 구세주로 받아들인 믿음의 표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한 번 "무서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갈릴리로 가라고 전하라고 하십니다. 이는 부활의 첫 만남이 단지 감정적 위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회복과 사명의 재위임으로 연결되는 중요한 전환점임을 의미합니다. 갈릴리는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된 장소로, 복음의 사명이 다시 시작될 출발점입니다.
이 말씀은 단지 과거의 제자들에게만 주어진 명령이 아닙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부활의 기쁨을 경험한 이들이 다시 삶의 자리로 돌아가야 함을, 그 자리에서 다시 복음을 전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부활은 새로운 시작이며, 우리의 믿음을 다시 세우고 사명을 재확인하는 순간입니다.
결론
마태복음 28:1-10은 절망의 무덤을 기쁨의 현장으로 바꾸신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는 위대한 복음의 본문입니다. 죽음을 끝이라고 여겼던 인간의 한계 속에서, 하나님은 생명을 일으키시고, 가장 낮은 자들을 통해 부활의 소식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무덤을 찾았던 여인들은 슬픔 속에 있었지만, 주님의 부활 앞에서 가장 먼저 기뻐하고, 그 기쁨을 나누는 자가 되었습니다.
부활은 단지 하나의 사건이 아닌, 새로운 삶의 시작이며, 모든 절망을 이기는 생명의 선언입니다. 오늘 우리도 무덤과 같은 현실 속에서, 빈 무덤과 부활하신 주님의 음성을 듣고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전하라. 갈릴리에서 다시 만나자."
고난의 끝자락에서 부활의 아침을 맞는 이 말씀 앞에서, 우리 또한 다시 소망을 붙들고,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십자가가 고통의 상징이었지만, 이제는 구원의 문이 되었듯, 우리의 고난도 부활을 통과한 뒤에는 증언이 될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과 함께 걷는 오늘, 우리는 참된 기쁨과 생명을 누리는 자들입니다. "기뻐하라! 그가 살아나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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