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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설교, 마태복음 28장 6절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bibletopics 2025.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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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나셨느니라: 죽음을 이기신 그리스도

들어가는 글

마태복음 28장 6절은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무덤을 찾은 여인들에게 천사가 말합니다.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이 구절은 예수님의 부활이 예언대로 성취되었음을 보여주며, 인간의 죄와 사망을 이기신 구속사의 절정을 증언하는 본문입니다. 이 구절을 중심으로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통해 완성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깊이 있게 묵상하며, 인간의 연약함과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대조 속에서 고백하게 됩니다.

부활의 현장: 무덤에 계시지 않고

마태복음 28장의 사건은 안식일이 지나고 안식 후 첫날, 곧 지금의 주일 아침에 시작됩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는 예수의 무덤을 찾았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여전히 슬픔과 절망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마주한 현실은 예상을 뛰어넘는 놀라운 소식이었습니다. 그들은 죽은 자의 흔적을 찾고자 했지만,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의 선포였습니다.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이 말씀은 무덤이 더 이상 죽음의 장소가 아님을 선포합니다.

무덤(grave, 타포스 τάφος)은 인간이 죄의 삯으로 받게 된 죽음의 자리입니다(로마서 6:23).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이 무덤을 빈 무덤으로 바꾸셨습니다. 그분의 몸은 더 이상 그곳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죽음은 예수님의 거룩한 몸을 붙잡아 둘 수 없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재는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죽음을 이기신 능력의 표지이며, 사망 권세의 패배를 선언하는 것입니다.

천사는 여인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선포하면서, 그 말씀을 듣던 자들이 예수님이 말씀하시던 내용을 기억하게 만듭니다. 이는 단지 감정의 위안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를 되새기게 하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제자들에게는 두려움을 넘어 담대함을 주었고, 우리에게는 영원한 생명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었습니다. 죽음의 권세가 무너진 그 순간, 하나님의 나라는 새로운 국면으로 나아가게 되었고, 우리는 그 은혜 가운데 거하게 되었습니다.

예언의 성취: 말씀하시던 대로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사역 중 수차례에 걸쳐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6장 21절에서는 예수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셨습니다. 이와 같은 예언은 제자들에게는 당시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이었지만, 실제로 사건이 이루어진 후에야 말씀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말씀하시던 대로"라는 표현은 헬라어로 "카쵸스 에이펜"(καθώς εῐπεν)인데, 이는 이미 반복적으로, 명확하게 선포되었던 말씀의 성취를 의미합니다. 부활은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인간의 죄를 속량하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이며, 구약의 예언과 예수님의 직접적인 선언을 통해 예고된 일이었습니다.

이사야 53장은 고난받는 종에 대한 예언으로, 그는 찔리시고 상함을 당하지만, 그의 고난이 우리를 위한 대속의 제물이 되며, 결국 하나님께서 그의 생명을 살리실 것을 암시합니다. 시편 16편 10절에서도 "주는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썩지 않게 하실 것"이라는 말씀은, 바로 예수님의 부활을 예견한 구약의 언어입니다. 이처럼 부활은 성경 전체를 꿰뚫는 구속사의 흐름 안에서 이해되어야 하며,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 4절에서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고 말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부활이 그분이 곧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증하는 사건이며, 이 땅의 역사와 시간 속에 실제로 임한 하나님의 권능의 표징임을 나타냅니다. 우리는 부활을 통해 예수님의 신성과 메시아적 사명을 확인하게 되며, 이는 우리로 하여금 그분을 믿고 따르도록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구속사의 완성: 살아나셨느니라

"살아나셨느니라"는 말은 단지 과거의 한 사건에 대한 기술이 아닙니다. 이 표현은 헬라어로 "에게르테"(Ἐγέρθη)이며, 이는 능동형으로 하나님께서 친히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소생이 아니라, 죄와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는 승리의 선포입니다. 하나님은 죽음을 잠시 이기는 것이 아니라, 그 뿌리 자체를 무너뜨리셨고, 예수님은 새로운 피조물의 첫 열매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고전 15:20).

예수님의 십자가는 단지 처형의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가 동시에 실현된 자리입니다. 예수님은 죄 없으신 분이셨지만, 죄인 된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짊어지셨습니다. 이 대속의 죽음은 희생제물(히브리어: 카파르 כּפר, 속죄하다)의 개념을 내포하며,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고, 동시에 죄인을 향한 사랑을 표현한 절정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외치신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는 하나님께 버림받은 고통을 표현하지만, 동시에 인류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의지를 드러냅니다. 그 절규 속에는 하나님과의 단절이라는 가장 깊은 고통과, 그 안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부르는 신뢰가 함께 녹아 있습니다. 그 고난은 우리를 위한 길이었고, 그 길의 끝에는 부활이라는 새로운 시작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부활은 십자가의 고통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단지 슬픔으로 끝나지 않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승리로 이어졌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존재로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여시며, 믿는 자로 하여금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합니다. 바울의 선언처럼,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라는 외침은 바로 이 부활의 승리를 선포하는 찬양입니다.

우리는 고난주간을 지나며 십자가 앞에 서야 합니다. 그 고통은 우리를 위한 것이었고, 그 사랑은 헤아릴 수 없는 은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빈 무덤 앞에서 살아나신 주님을 만납니다. 그 만남이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하고, 절망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게 하며, 믿음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합니다.

결론

예수님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습니다. 이는 단지 신앙의 상징이나 영적 의미를 넘어서, 실제 역사 가운데 일어난 사건이며, 믿는 자에게는 영원한 생명의 시작입니다. 무덤은 비어 있었고, 그 빈 무덤은 하나님의 능력을 증언하는 증표였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구약의 예언을 성취한 사건이자, 하나님의 구속사가 완성된 절정입니다.

고난주간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고난을 깊이 묵상하게 하지만, 그 고난의 끝이 영광의 아침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합니다. 십자가는 죽음의 상징이지만, 동시에 생명의 문이 되었고, 부활은 우리 모두에게 소망의 새 날을 여는 시작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부활의 능력을 따라 살아가는 존재로 부르심을 받았으며, 날마다 그분의 생명 안에서 새롭게 되어갑니다. 그가 살아나셨기에, 우리도 영원히 살 것입니다. 이것이 부활절의 진정한 복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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