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9:11 - 19:27
돌아오실 왕을 기다리는 청지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이미’와 ‘아직’ 사이를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구원을 이루셨고, 아직 그분의 재림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 두 시점 사이에서 우리는 그분을 기억하며 기다리고, 믿음으로 일상을 살아내야 합니다. 누가복음 19장 11절부터 27절까지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입성을 앞두고 들려주신 비유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곧 당장 나타날 줄로 기대하고 있었습니다(눅 19:11). 그러나 예수님은 그 기대를 수정시키며, 그 나라가 오기까지의 시간 속에서 우리가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하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주십니다. 이 말씀은 단지 ‘주어진 것’에 대한 책임이 아니라, 왕이신 예수님의 통치를 기다리는 자의 영적 자세를 말해주는 본문입니다.
먼 나라로 간 왕(눅 19:12-14)
예수님은 한 귀인이 왕위를 받기 위해 먼 나라로 간다는 이야기로 비유를 시작하십니다(눅 19:12). 이 장면은 구약적 상징을 떠오르게 합니다. 고대 유대에서는 실제로 헤롯 가문이 로마에 가서 왕위를 위임받아 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이야기를 통해 자기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권세를 위임받고 다시 올 왕이라는 사실을 암시하십니다.
왕은 떠나기 전에 열 명의 종을 불러 각각 한 므나씩 나누어 줍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눅 19:13). 이 ‘한 므나’는 약 세 달 치 임금 정도 되는 금액입니다. 액수보다는 의미가 중요합니다. 종들에게는 동일한 기회가 주어졌고, 왕의 부재 기간 동안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미션이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귀인의 백성들은 그를 미워하여 대표단을 보내어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나이다”라고 말합니다(눅 19:14). 이것은 예수님을 거부했던 당시 유대인들의 태도를 반영하는 동시에,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세상의 본성을 드러냅니다.
돌아온 왕과 회계의 시간(눅 19:15-19)
귀인이 왕위를 받아 돌아옵니다. 그리고 자신이 돈을 맡겼던 종들을 불러 장사한 것을 보고합니다(눅 19:15). 첫 번째 종은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깁니다. 그는 배로 불리지 않았습니다. 열 배였습니다. 이는 비범한 충성과 지혜, 그리고 주인의 뜻을 아는 성실함을 보여줍니다. 주인은 그에게 말합니다.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눅 19:17).
두 번째 종은 다섯 므나를 남깁니다. 그에게도 동일한 칭찬과 함께 다섯 고을의 권세가 주어집니다(눅 19:19).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원리를 발견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평가 기준은 절대적인 결과가 아니라 ‘충성’입니다. 주님은 얼마나 많이 벌었느냐보다, 얼마나 진실하게 주어진 기회를 활용했는지를 보십니다. 열 고을이나 다섯 고을이나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주인의 마음에 합한 삶, 그것이 진정한 상급입니다.
두려움에 묶인 삶(눅 19:20-23)
그런데 세 번째 종이 등장합니다. 그는 므나를 수건에 싸두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눅 19:20). 그는 이유를 말합니다. “주인은 엄한 사람이라 두려워하였나이다”(눅 19:21). 이 말은 단지 변명이 아니라, 주인을 오해한 신앙의 실패입니다. 그는 주인을 믿음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무서운 채권자처럼 여겼습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의 실패는 단순한 무능이 아니라, 주인을 향한 신뢰의 부재입니다. 그래서 주인은 그에게 말합니다. “악한 종아 네 말로 너를 심판하노라”(눅 19:22). 그가 정말 주인을 무서워했다면, 최소한 은행에 넣어 이자라도 남겼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두려움’을 핑계 삼아 ‘게으름’을 정당화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혹시 우리도 신앙의 이름으로 현실을 회피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의 뜻을 따르기보다는, 무탈함만을 구하며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믿음은 움직임입니다. 믿음은 작은 것을 순종으로 키워내는 삶입니다. 묶여 있는 므나는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은 인생의 상징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장사하라. 내가 돌아올 때까지.”
통치받기를 거부한 자의 최후(눅 19:24-27)
왕은 그 므나를 열 므나 남긴 자에게 주라고 명합니다(눅 19:24). 주위 사람들이 말합니다. “주여 저에게 이미 열 므나가 있나이다.” 하지만 왕은 대답합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눅 19:26). 이 말씀은 불공평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의 역동성을 말해줍니다. 믿음으로 반응하는 자는 더 많은 것을 맡게 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는 결국 자격을 상실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가장 무서운 구절로 비유를 마무리하십니다. “내가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였느니라”(눅 19:27). 이 말씀은 비유의 결론이자, 종말론적 심판의 실재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을 거부한 자들, 하나님의 통치를 끝내 받아들이지 않은 자들은 그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비유는 단순히 성실함을 강조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다시 오실 왕을 기다리는 이 땅의 청지기들에게 주시는 영적 각성의 메시지입니다. 지금은 주인이 보이지 않지만, 반드시 돌아오신다는 것. 그리고 그때 우리의 삶이 그분 앞에 드러나리라는 것. 그것이 이 말씀의 중심입니다.
마무리 묵상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지금 어떤 므나를 맡고 있습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은사, 기회, 관계, 직분은 주인이 위탁하신 고귀한 자산입니다. 주님은 우리 각자에게 동일한 기회를 주셨고, 그 기회를 통해 충성을 보이길 원하십니다. 그분은 지금도 우리를 바라보시며 말씀하십니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믿음은 ‘기다림’과 ‘실천’ 사이의 긴장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믿음은 먼 나라로 떠나신 왕을 신뢰하며, 지금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입니다. 두려움에 묶이지 말고, 비난에 굴복하지 말며, 게으름을 합리화하지 맙시다. 다시 오실 주님 앞에 설 그 날을 기대하며, 맡겨진 므나를 삶 속에서 생명의 열매로 바꾸어 갑시다.
왕은 반드시 돌아오십니다. 그날, 주님께서 우리 이름을 부르시며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잘하였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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