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묵상, 성전 정화
성전 정화: 거룩함을 회복하시는 예수님
성전을 깨끗하게 하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다음 행하신 첫 번째 행동은 성전을 정화하는 일이었다. 마태복음 21:12-17에서 예수님은 성전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자들의 상을 엎으셨다. 그리고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라고 말씀하셨다.
당시 성전에서 이루어지던 장사는 단순한 물품 거래가 아니었다. 제사를 드리기 위해 온 사람들에게 과도한 이윤을 남기며 짐승을 팔고, 성전세를 내기 위해 환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높은 수수료를 받으며 돈을 바꾸어 주었다. 이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방해하는 행위였다. 성전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교제하는 거룩한 장소였으나, 종교 지도자들은 이를 개인의 이익을 위한 장터로 만들어버렸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불의를 가만히 두고 보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집을 정화하시고, 본래의 거룩한 목적을 회복시키셨다. 이것은 단순한 분노의 행동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다시 세우시는 일이었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이루어지는 타락한 관행을 그대로 두실 수 없었고,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거룩한 공간으로 성전을 회복시키고자 하셨다.
오늘날 우리의 신앙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마음은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세상의 욕심과 죄로 인해 이 성전을 더럽히고 있지는 않은가? 예수님께서 성전을 깨끗하게 하셨던 것처럼, 우리 마음속에 있는 불순한 것들을 제거해야 한다. 예배가 형식적으로 흐르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사라진 채 종교적 행위만 남아 있다면, 우리는 예수님 앞에서 다시금 우리의 신앙을 점검해야 한다.
참된 기도의 집을 회복하시다
예수님은 성전을 정화하시며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다. 성전은 본래 하나님께 기도하고 교제하는 장소였다. 하지만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그 의미를 잃어버렸고, 성전을 이용해 부를 축적하는 데만 관심을 두었다. 예수님은 성전을 다시 본래의 목적대로 회복시키고자 하셨다.
기도는 단순한 종교적 행위가 아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제이며, 그분의 뜻을 구하는 시간이다. 그러나 기도의 자리가 상업적 이익과 인간의 탐욕으로 채워진다면, 그것은 더 이상 거룩한 공간이 될 수 없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화하셨던 것은 단순히 불의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기도를 중요하게 여기지만, 때로는 기도를 통해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데 집중할 때가 많다.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도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는 단순한 청원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이다. 성전이 본래의 목적을 되찾아야 하듯, 우리의 기도 생활도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는 고난주간을 보내며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화하신 이유를 깊이 묵상해야 한다. 성전이 기도의 집이 되어야 하듯, 우리의 삶도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정결함을 유지해야 한다. 참된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며, 우리의 영혼을 새롭게 하는 능력이 있다. 우리가 성전에서 하나님을 만나듯,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어린아이들의 찬양과 바리새인들의 반응
성전을 깨끗하게 하신 후, 예수님께서는 병든 자들을 고쳐 주셨다. 그리고 그곳에서 어린아이들이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외치며 예수님을 찬양했다. 그러나 종교 지도자들은 이러한 모습을 보고 불쾌하게 여겼다. 그들은 예수님께 이 아이들을 꾸짖으라고 요구했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시편 8편을 인용하시며 "어린아이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예비하셨나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어린아이들은 순수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찬양했다. 그들은 종교적 권위나 사회적 지위와 상관없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찬양했다. 그러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들은 성경을 연구하고, 율법을 가르쳤지만, 정작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를 영접하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는 누구와 같은 모습인가? 어린아이들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찬양하는가, 아니면 종교 지도자들처럼 자신의 신념과 기준에 갇혀 예수님을 배척하는가? 신앙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다. 신앙은 예수님을 진정으로 영접하고, 그분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우리의 신앙이 형식적이지 않고, 예수님을 향한 순수한 사랑과 찬양으로 가득 차 있기를 소망해야 한다.
예수님은 고난주간 동안 사람들의 반응을 보셨다. 어떤 이는 찬양했고, 어떤 이는 반대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의 반응에 흔들리지 않으셨다. 그는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로 나아가셨다. 우리도 신앙 생활에서 사람들의 평가에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앞에서 참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결론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화하신 사건은 단순한 분노의 표현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회복하는 일이었다. 성전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이며, 기도의 집이어야 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를 자신의 유익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었고, 예수님은 이를 바로잡으셨다.
오늘날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자. 우리의 마음은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다. 그러나 우리는 때로 세상의 욕심과 걱정으로 인해 이 성전을 더럽히고 있지는 않은가? 예수님은 우리의 삶을 정화하시길 원하신다. 우리가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고, 참된 예배자로 살아갈 때, 우리의 삶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성전이 될 것이다.
고난주간을 보내며, 예수님의 성전 정화를 마음에 새기자. 성전이 본래의 역할을 회복해야 하듯, 우리의 신앙도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기도하는 삶, 순수한 예배, 그리고 예수님을 향한 온전한 찬양이 우리 삶 속에서 회복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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