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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주일 설교, 로마서 6장 4절 새 생명 가운데 행하는 삶

bibletopics 2025.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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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생명 가운데 행하는 삶

부활 주일에 우리는 단지 역사적 사건으로서의 부활만을 기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묵상하는 로마서 6장 4절은 부활이 우리 삶과 신앙에 어떤 실질적 변화를 일으키는지를 교리적으로 설명해 주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도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된 자로서 어떤 존재이며,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깊이 있게 고백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연합된 세례의 의미

사도 바울은 로마서 6장에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아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교리적으로 설명하며, 그 근거를 세례의 의미 속에서 찾고 있습니다. 여기서 '세례를 받음으로'라는 표현은 헬라어 "밥티조(βαπτίζω)"로, '담그다', '완전히 잠기게 하다'라는 뜻을 가집니다. 이는 단지 물을 뿌리는 상징적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철저한 동일시를 나타냅니다. 곧, 우리가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본문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합하여'는 헬라어로 "수뮈토스(συμφυτος)"이며, '함께 자라난', '한 몸을 이룬'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단순한 외적 결합이 아닌, 내적인 일체감, 생명의 연합을 나타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었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우리의 옛 자아도 그와 함께 죽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세례는 단지 신앙 고백의 형식이 아니라, 옛 사람의 죽음을 상징하는 결정적인 전환점입니다.

이는 죄에 대하여 단절된 삶을 의미합니다. 더 이상 우리는 죄의 지배 아래 있지 않으며, 그 옛 삶은 십자가 위에서 종료된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고백처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라는 말은 단지 상징이 아니라, 실제적 정체성의 변화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에 연합한 세례는 과거의 나를 종결짓고, 전혀 다른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거룩한 단절의 순간입니다.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살리심

이제 바울은 부활의 동력을 설명합니다.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라는 표현에서 우리는 부활의 주체가 하나님 아버지이심을 다시금 확인합니다. "영광"이라는 단어는 헬라어 "독사(δόξα)"로, 하나님의 존재 자체와 본질, 능력, 권능을 포함한 총체적 속성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그분의 임재이자, 창조와 구속의 능력이며, 무엇보다도 부활의 근원이 되는 능력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완전한 순종으로 죽으셨고, 그 죽음은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완전한 만족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순종을 높이셨고,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습니다. 이는 필연적 결과였습니다. 부활은 단지 예수님의 신성을 증명하는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죄와 사망을 이기고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창조의 사건입니다.

로마서 1장 4절은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라고 선포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분이 참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증하며, 우리 믿음의 기초가 되는 사건입니다. 부활은 하나님의 주권적 능력의 표현이며, 그 영광의 결과로서 그리스도는 영원한 생명의 주로 세워지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바로 이 하나님의 영광으로부터 흘러나옵니다. 단지 죄를 용서받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전혀 새로운 존재로 창조되는 생명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은 단지 교리적 명제가 아니라, 살아 있는 능력이며, 하나님 자신의 영광이 드러나는 사건입니다.

새 생명 가운데 행하게 하려 함이라

본문의 절정은 마지막 구절에 담겨 있습니다. "우리도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새 생명'은 헬라어 "카이노테스 조에스(καινότητι ζωῆς)"로, '본질적으로 새로운 생명의 질'을 의미합니다. 이는 단지 시간적으로 새롭다는 뜻이 아니라,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종류의 생명, 곧 하나님의 생명을 말합니다.

이 생명은 단순히 영원히 산다는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과 연합된 삶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거하게 되며, 그 생명이 우리 삶을 이끌고 변화시키며, 매일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성품과 능력을 드러내게 합니다. 이 새로운 생명은 죄에서 자유케 하며, 의를 따라 살아가도록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여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는 동사는 헬라어 “페리파테오(περιπατέω)”로, ‘걷다’, ‘살아가다’는 뜻을 가집니다. 이는 단순한 순간의 사건이 아니라, 지속적인 삶의 방식, 곧 새로운 존재로서의 정체성이 일상 속에서 구현되는 삶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이제 옛 삶의 방식을 벗고, 새로운 생명의 원리를 따라 살아야 하는 자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의 능력입니다. 부활은 단지 미래의 부활을 약속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삶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옛 자아에 속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서 날마다 새로워지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부활은 교리적인 차원을 넘어 실존적인 현실입니다. 믿는 자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합된 자이며, 그 증거는 삶에서 드러나야 합니다. 예배, 기도, 말씀 묵상, 이웃 사랑, 죄에 대한 민감함, 의에 대한 갈망, 이 모든 것은 새 생명 가운데 행하는 삶의 열매입니다. 부활은 예수님의 승리만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적용된 승리입니다.

결론

로마서 6장 4절은 부활을 단순히 역사적 사건으로가 아니라, 믿는 자의 실존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교리적 진리로 선포합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의 죽음에 연합하였고, 하나님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새 생명 가운데서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 부활은 단지 장래의 소망이 아니라, 오늘의 현실이며, 삶의 방식입니다. 이제 우리는 죄의 종이 아니라 의의 종으로, 죽음의 지배 아래 있는 자가 아니라 생명의 지배 아래 있는 자로 살아갑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며, 부활 주일에 우리가 고백해야 할 믿음의 실체입니다. 오늘 이 말씀 앞에서 다시금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날마다 새 생명 가운데 행하는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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