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칠언 묵상 4)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마태복음 27장 46절과 마가복음 15장 34절에 기록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는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신 네 번째 말씀입니다. 이는 시편 22편 1절을 인용하신 말씀으로, 단순히 절망의 외침이 아닌, 대속의 절정에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충돌하는 순간을 보여주는 깊은 구속사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외침을 통해 우리 대신 하나님의 진노를 감당하시고, 버려진 자의 자리에서 구원의 문을 여신 것입니다.
시편 22편과 예수님의 외침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절규하신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는 히브리어에서 유래한 표현으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뜻입니다. 이 구절은 시편 22편 1절의 직설적인 인용이며, 예수님께서 고통 중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시며 인류에게 그 말씀을 상기시키는 장면입니다. 이는 단지 감정의 토로가 아니라, 십자가 위에서도 말씀을 붙들고 계신 그분의 영적 통찰과 구속사적 자각이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시편 22편은 다윗의 깊은 고난과 절망 속에서 시작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하나님의 구원과 승리를 찬양하는 내용으로 바뀌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 시편의 서두를 외치신 것은 단지 고통을 표현하기 위함이 아닌, 자신이 바로 시편의 성취자요, 고난받는 의인이며, 구속사 가운데 하나님께서 예언하신 메시야임을 드러내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이는 구약과 신약, 예언과 성취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만나는 결정적인 지점입니다.
시편 22편에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예고하는 표현들이 다수 등장합니다. 예를 들어,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뽑나이다"(22:18)는 병사들의 행위를, "그들이 내 손과 발을 찔렀나이다"(22:16)는 십자가형의 실제를,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22:6)는 예수님의 철저한 낮아지심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 외침은 단순히 개인적 고통이 아닌, 하나님의 예언과 약속의 완전한 성취라는 구속사의 정수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문턱에서조차 말씀을 인용하시며 하나님께 대한 절대 신뢰를 놓지 않으십니다. "나의 하나님"이라는 반복된 호칭은 단절된 것처럼 보이는 상황 속에서도 관계를 잊지 않으시는 예수님의 신앙 고백입니다. 이는 고통 중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모범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분이 얼마나 철저히 인간의 자리에 오셨는지를 드러냅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은 고통의 실체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겪으신 고통은 단지 육체적 차원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분이 가장 큰 고통으로 외친 것은 바로 하나님께로부터 철저히 버림받는 영적 단절이었습니다. 헬라어 egkataleipo는 "완전히 떠나다, 버려두다"는 뜻으로, 이는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관계를 단절하고 돌아보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된 상태, 즉 죄인이 받아야 할 궁극적인 심판을 몸소 겪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과 본질상 하나이신 예수님이 왜 이런 단절을 겪으셔야 했는가? 이는 전 인류의 죄를 짊어지신 분이기에, 하나님의 거룩하신 공의 앞에서 죄로 간주되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21절은 이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입니다. 이 선언은 예수님이 단지 죄인의 대리인이 아닌, 아예 죄 자체로 취급되셨다는 뜻입니다. 그분은 인간의 모든 죄와 허물을 자기 안에 끌어안고, 대신 심판의 자리에 서신 것입니다.
이 고통은 우리의 언어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절대적인 고립의 상태였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사랑과 친밀 속에 계셨던 아버지께 외면당하심으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단절과 고통을 감당하셨습니다. 이는 구약의 속죄제처럼 완전히 불살라지는 제물처럼, 예수님 자신이 철저히 심판의 불 가운데 던져진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왜 그토록 철저히 버려지셔야 했는지를 생각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죄의 무게를 마주하게 됩니다. 우리의 탐욕과 불순종, 이기심과 교만이 바로 그분을 버림받게 만든 원인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분이 하나님의 침묵 가운데 부르짖으셨기에, 우리는 오늘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은혜 가운데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완성된 대속의 구속사
예수님의 네 번째 말씀은 구속사의 정점입니다. 이는 단순히 예언의 성취를 넘어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깨어진 관계가 어떻게 회복되는지를 보여주는 실질적인 대속의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대제사장으로서, 또 죄 없는 희생 제물로서 스스로를 내어주심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신 공의를 만족시키셨습니다.
히브리서 9장 26절은 예수님의 이 대속 사역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예수님은 단지 모범을 보이기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죄의 값을 실제로 지불하시기 위해, 그 몸을 온전히 바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대가는 단지 피 흘림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진노와 단절, 심판을 통째로 받아내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이 외침은 곧 대속이 완성되었다는 선포입니다. 절규처럼 들리는 이 말씀 속에는 구속의 결실이 담겨 있으며, 우리는 이로 인해 하나님과 다시 화목하게 되는 은혜를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5장 10절은 말합니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예수님의 외침은 곧 화해의 초석이 되었고, 우리를 새로운 생명으로 이끄는 다리가 되었습니다.
이 구속은 단지 개인적인 위로에 머물지 않고, 전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의 초대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죄 가운데 있어도, 이 외침 앞에서 회개하고 돌아오면 새로운 생명의 길이 열립니다. 십자가는 더 이상 저주의 도구가 아니라, 구원의 상징이 되었고, 절망의 종착지가 아니라 소망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결론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는 예수님의 네 번째 말씀은 십자가 위에서 외치신 가장 깊은 외로움과 가장 무거운 진실이 담긴 고백입니다. 그러나 이 외침은 단지 버려짐의 절규가 아니라, 구약의 예언이 성취되는 순간이었고, 하나님의 공의가 만족되고 사랑이 나타난 자리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철저히 버림받으심으로써,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여셨습니다.
이 말씀은 고난주간을 지나며 우리가 반드시 마음에 새겨야 할 복음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이 그토록 깊은 외침을 남기신 이유는 단 하나,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는 그 자리에 서신 예수님의 희생을 통해 우리는 결코 버림받지 않는 은혜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외침 앞에 멈추어 서야 합니다. 그분의 외침이 내 구원의 문을 열었다는 사실 앞에 무릎 꿇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고통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며, 침묵은 단절이 아니라 회복의 서곡이었습니다. 그 외침은 오늘도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너를 위해 버림받았노라. 그러니 너는 다시는 혼자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십자가의 은혜를 날마다 기억하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은혜를 누릴 뿐 아니라, 복음을 통해 또 다른 이들을 생명의 길로 이끄는 자로 부르심에 응답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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