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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3:34-35 묵상, 비유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내다

bibletopics 2025.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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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추어진 이야기, 비유에 숨겨진 하나님 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할 본문은 마태복음 13장 34절과 35절입니다. 짧은 두 절이지만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왜 비유로 말씀하셨는지, 그 안에 어떤 깊은 신비가 담겨 있는지를 보여주는 구속사적인 열쇠와 같은 말씀입니다. 우리는 자주 비유를 단순한 설명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진리를 쉽게 설명하려는 목적으로만 이해하곤 하죠. 그러나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비유가 단지 교육적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사의 방식이자, 오래 감추어진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계시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비유는 감추어진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감추어진 하나님의 마음을 드러내는 도구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이신 하나님이시며, 그분의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단어는 하나님 나라의 언어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 비유의 배경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본질, 그리고 감춰졌다가 이제는 드러나는 구원의 신비를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모두 비유였더라(마 13:34)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마 13:34). 여기서 '모든 것'이란 마태복음 13장에서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씨 뿌리는 자, 가라지, 겨자씨, 누룩의 비유 등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일련의 비유들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이 비유들은 단지 이야기의 형식을 차용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않으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표현의 선호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독특한 방식입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듣는 자로 하여금 단순히 이해가 아니라, 참여를 요구합니다. 비유는 정답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스스로 질문하게 만들고, 그 질문 속에서 하나님의 뜻에 다가가게 합니다.

비유는 머리보다 가슴으로, 논리보다 상상으로, 판단보다 묵상으로 다가옵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진리가 세상 나라의 논리로는 이해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유는 무리들에게는 감추어진 것이었고, 제자들에게는 열려진 신비였습니다.

감추인 것을 드러내시려 함이라(마 13:35)

이어서 마태는 이렇게 해석합니다.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마 13:35). 마태는 이 구절을 통해 예수님의 비유적 가르침이 구약의 예언 성취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 인용은 시편 78편 2절의 내용입니다.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며 예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을 드러내리니.”

'창세부터 감추어진 것'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구속사가 오랜 세월 동안 숨겨져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즉, 예수님의 비유는 단지 새롭고 신선한 방식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하나님께서 준비하셨던 구원의 계획을 드러내는 방식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비유로 선포될 때, 그 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드러나고, 창세 이래 감추었던 은혜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예수님의 사역 자체가 구속사의 완성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비유 하나하나가 단지 가르침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는 순간입니다. 감추인 진리가 드러나는 시간, 하나님 나라가 선언되는 자리. 비유는 말씀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이야기를 열어주는 열쇠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쉽게 드러나지 않습니다(마 13:34-35)

왜 예수님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말씀하지 않으셨을까요? 왜 어떤 이들에게는 열려 있고, 어떤 이들에게는 감춰졌을까요? 그것은 진리를 알아듣는 것이 단지 지적 능력이 아니라, 마음의 태도와 믿음의 방향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항상 감추어진 형태로 오고, 그것을 알아보는 자는 믿음으로 반응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진리를 억지로 들이미시지 않습니다. 대신 비유로 말씀하시며, 스스로 찾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이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존중하시는 하나님의 방식이며, 동시에 은혜를 사모하는 자만이 발견할 수 있는 복의 방식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비유는 이중적인 기능을 합니다. 갈망하는 자에게는 은혜를 드러내고, 무심한 자에게는 심판의 도구가 됩니다. 이는 곧 하나님의 나라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지는 것 같지만, 실상은 듣고자 하는 자, 갈망하는 자에게만 열리는 세계임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구속사의 선포입니다(마 13:34-35)

비유의 진짜 목적은 '창세부터 감추어진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구속사의 비밀을 드러내는 수단입니다. 구약의 그림자였던 것들이 비유 속에서 형상으로 바뀌고, 예표였던 것들이 실체로 나타납니다. 비유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보여주는 창문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구약의 성취이자, 신약의 시작이며, 오늘 우리에게 임한 하나님의 현재입니다. 비유를 통해 예수님은 메시아 되심을 선포하셨고, 하나님 나라의 질서와 속성, 그리고 그 백성의 정체성을 밝혀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 우리가 비유를 대할 때 필요한 것은 단지 해석이 아닙니다. 그것은 겸손함입니다. 말씀 앞에 나 자신을 여는 믿음입니다. 비유는 마음을 닫은 자에겐 침묵이요, 마음을 연 자에겐 계시입니다. 그것은 해석의 기술이 아니라, 순종의 자세로 풀리는 하나님의 언어입니다.

마무리 묵상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오늘도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지금도 하나님 나라의 진리가 감추어져 있고, 그 진리를 보고 듣고자 하는 자에게만 열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그분의 비유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 비유는 단지 이야기 속에 감춰진 교훈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 찾아오는 하나님 나라의 초대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마다, 예수님의 비유가 우리 삶 안에 스며들고, 그것이 우리의 마음을 흔들고, 결국 삶의 방향을 바꾸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진리는 감추어진 보물과 같습니다. 그러나 찾는 자에겐 반드시 열리고, 열리는 자에겐 반드시 생명이 됩니다. 오늘도 그 비유 앞에 서서, 감춰졌던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하게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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