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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2:34-46 묵상, 가장 큰 계명

bibletopics 2025.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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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이어지는 질문의 끝

사랑하는 여러분, 고난주간의 저녁이 깊어질수록, 예수님의 말씀도 점점 더 정수로 향합니다. 대적자들은 연이어 질문을 던지며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려 하지만, 오히려 예수님은 그 질문들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핵심을 드러내십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할 본문, 마태복음 22장 34절부터 46절까지는 일련의 질문과 응답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말씀입니다. 한 율법사가 던진 '가장 큰 계명'에 대한 질문과, 예수님께서 던지신 반문은, 단지 교리적 논쟁이 아니라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시는 예수님의 중심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랑의 메시지입니다. 사랑이 율법의 완성이며, 다윗의 자손이신 그리스도가 참된 주 되심을 드러내는 이 말씀은 고난주간의 영적 정점을 이루고 있습니다.

가장 큰 계명을 묻는 마음 (마 22:34-36)

예수님의 침묵시키시는 능력을 본 바리새인들이 다시 모입니다. 그리고 그들 중 율법에 능한 한 사람이 시험하려는 의도로 묻습니다.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마 22:36)

이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닙니다. 유대 사회에는 율법 조항이 613개나 있었고, 그 중 어떤 계명이 우선순위가 높은지를 두고 항상 논쟁이 있었습니다. 이 율법사는 그 논쟁을 예수님 앞에서 다시 펼쳐놓으며, 그의 판단을 통해 예수님의 권위를 시험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질문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의미가 숨겨져 있습니다. 바로, 율법이 말하는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갈망이기도 했던 것이지요.

고난주간에 이 질문은 우리에게도 다시 던져집니다. 우리의 신앙의 중심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지키고자 애쓰는 것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믿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이 질문 앞에서 인간이 묻는 질문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되돌려 주십니다.

하나님 사랑, 마음의 방향을 돌리다 (마 22:37-38)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마 22:37-38)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전인적 헌신'입니다. 마음, 목숨, 뜻—즉 감정, 생명, 의지를 다해 하나님을 향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예배이며, 사랑은 순종이며, 사랑은 삶의 방향입니다.

고난주간에 우리가 묵상해야 할 가장 중요한 진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가신 이유가 바로 이 사랑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사랑, 우리를 향한 끝없는 사랑—그 사랑이 십자가의 동력이며, 부활의 기반입니다. 예수님은 단지 말씀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림으로 그 사랑을 완성하셨습니다.

이웃 사랑, 십자가의 수직과 수평 (마 22:39-40)

그리고 예수님은 덧붙여 말씀하십니다.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9-40)

이웃 사랑은 하나님 사랑의 필연적 결과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반드시 이웃을 사랑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형상이 그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가 위로 뻗은 한 줄기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듯, 우리의 신앙도 이웃을 향한 수평의 손길 없이는 온전해질 수 없습니다.

고난주간은 이 두 사랑이 만나는 지점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우리를 향한 사랑이 교차하는 자리고, 그분의 죽음은 그 사랑의 가장 깊은 표현입니다. 우리가 그 사랑을 안다면, 우리는 더 이상 이웃을 무시하거나 무관심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 사랑을 입었다면, 이제는 나누어야 할 차례입니다.

주는 누구냐, 그리스도는 누구냐 (마 22:41-46)

예수님께서는 이제 반문하십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 그들은 대답합니다. "다윗의 자손이니이다"(마 22:42). 그러자 예수님은 시편 110편을 인용하여 물으십니다.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라 하겠느냐?"(마 22:43-45)

이 질문은 단순히 혈통에 대한 논쟁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정체성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입니다. 예수님은 단지 다윗의 후손, 인간으로서의 메시아가 아니라, 다윗도 경배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선언입니다. 바로 그분이 지금 십자가를 향해 가고 계십니다.

고난주간의 중심에는 이 질문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그는 다윗보다 크신 분이며, 율법보다 완전하신 분이며, 죽음을 이기고 생명을 주시는 참된 왕이십니다. 이 진리 앞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질문하지 못합니다. 본문은 말합니다. "한 말도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고, 그 날부터 감히 그에게 묻는 자도 없더라"(마 22:46)

마무리 묵상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가 묵상한 본문은 한 율법사의 질문에서 시작하여, 온 율법의 완성으로 이어지고, 결국 그리스도의 정체성 앞에 침묵으로 끝나는 이야기입니다. 고난주간은 질문의 시간이면서도, 동시에 대답의 시간입니다. 우리는 묻습니다. 주님, 무엇이 가장 중요합니까? 주님은 대답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우리는 다시 묻습니다. 주님,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분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다윗의 자손이요, 다윗의 주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다.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주님의 사랑 앞에, 그 십자가 앞에, 우리는 어떤 대답을 하겠습니까? 사랑하라는 그 명령 앞에서, 다윗의 주 앞에서, 다시 무릎 꿇고 결단하는 한 주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으로 이어진 그 질문의 끝에서,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은 바로 이 고백입니다. "주님,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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