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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2:23-33 묵상, 사두개인 부활은 있는가?

bibletopics 2025.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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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계신 이의 하나님

사랑하는 여러분, 고난주간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예수님이 어떤 질문에도 진리를 굽히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 질문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내시는 장면을 자주 마주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22장 23절부터 33절까지는 부활에 대한 사두개인들의 질문과, 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단순한 교리 논쟁처럼 보이지만, 이 본문 속에는 죽음과 생명을 초월하신 하나님의 신비,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에 두고 계시면서도 여전히 생명의 복음을 선포하고 계신 깊은 구속사의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고난주간의 침묵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숨결을 만나고자 합니다.

죽음 이후를 가볍게 여긴 사람들 (마 22:23-28)

이날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나아옵니다. 그들은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자들이었습니다(마 22:23). 그들이 들고 나온 질문은 기묘한 이야기입니다. 일곱 형제가 있었고, 첫째가 아내를 맞이했다가 후사 없이 죽고, 그 아내가 둘째, 셋째, 일곱째까지 모두에게 시집을 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을 던집니다. "그런즉 그들의 부활 때에 일곱 중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마 22:28)

사두개인들의 질문은 단지 지식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부활을 조롱하고, 신앙의 본질을 풍자하려는 시도였습니다. 그들은 죽음 이후의 세계를 우스꽝스러운 논리로 왜곡하며, 결국은 하나님 나라의 본질을 지워버리려 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고난주간의 이 시점에서 우리는 이 질문이 얼마나 비극적인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지금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계십니다. 그 죽음은 단지 육체적 고통이 아니라, 온 인류의 죽음을 짊어진 대속의 죽음입니다. 그런데 그 앞에서 어떤 이들은 부활을 부정하고, 영원을 조롱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요.

성경과 하나님의 능력을 알지 못한 자들 (마 22:29-30)

예수님은 그들의 질문에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마 22:29). 예수님의 이 말씀은 단호하면서도 동시에 자비로운 책망입니다. 그들은 말씀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말씀의 생명력을 보지 못했고, 하나님의 능력을 논하면서도 그 능력을 체험하지 못한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 후의 삶이 이 땅에서의 연장선이 아니라 전혀 다른 차원의 삶임을 설명하십니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마 22:30). 부활은 단지 삶의 반복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창조입니다. 인간적인 연속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영광의 실재입니다.

고난주간은 이 땅에서 벌어지는 가장 어두운 현실 속에서, 가장 밝은 미래를 믿는 시간입니다. 십자가는 죽음의 상징이지만, 부활을 품고 있습니다. 사두개인들의 질문은 그 사실을 가리려 하지만, 예수님의 대답은 오히려 그 진실을 찬란하게 드러냅니다.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 (마 22:31-32)

그리고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라 하신 것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마 22:31-32)

이 말씀은 단순히 성경의 문장을 인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가, 죽음으로 끊어지지 않는다는 강력한 선언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오래전에 죽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그들의 하나님이십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 안에서 여전히 살아 있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죽지 않습니다. 십자가가 무서운 것은 육신의 고통 때문이 아니라, 영혼이 하나님과 단절되는 것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단절을 끊으셨고, 우리를 다시 살아 있는 자로 부르셨습니다. 고난주간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가장 위대한 진리는 바로 이것입니다—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진리 앞에서 침묵하는 무리들 (마 22:33)

예수님의 이 대답을 들은 무리들은 놀랍니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무리가 듣고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더라"(마 22:33). 여기서 '놀라다'는 단어는 단순한 감탄이 아니라, 충격과 감정의 전율을 함께 담고 있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그리고 그 진리 앞에 우리는 말을 잃습니다.

고난주간의 길목에서, 우리는 이 놀라움을 다시 회복해야 합니다. 부활을 아는 신자이지만, 그 부활이 얼마나 경이로운지 다시금 새겨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신앙이 단지 철학이나 도덕이 아닌, 죽음을 이기고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임을 다시 고백해야 합니다.

마무리 묵상

사랑하는 여러분, 고난주간은 어둠 속에서 빛을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단지 기다리는 자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부활의 소망을 품은 자들이며, 살아 있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사두개인들은 죽음 이후를 농담처럼 여겼지만, 예수님은 그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하시며, 거기서 생명을 길어 올리셨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신 이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시고, 이삭의 하나님이시며, 오늘 우리 각자의 이름을 부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이름 앞에서 오늘도 우리는 고백합니다. 나는 주님의 것입니다. 나는 살아 있는 자입니다. 이 믿음이 우리의 고난주간을 견디게 하며, 십자가를 지나 부활로 이끄는 능력이 될 줄 믿습니다. 주님은 살아 계십니다. 그리고 그 살아 계신 주님 안에, 우리도 살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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