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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19:38 묵상, 평화의 왕, 눈물의 길

bibletopics 2025. 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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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왕, 눈물의 길

예루살렘은 환호로 가득했습니다. 종려나무 가지가 흔들리고, 사람들의 외침이 하늘을 찔렀습니다. 그 소리 가운데 한 문장이 울려 퍼졌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눅 19:38) 하지만 그 환호의 순간 뒤에는 깊은 눈물이 감추어져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쁨의 외침 한가운데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왜 왕은 눈물을 흘리셨을까요? 이 고난주간, 우리는 그 눈물의 의미를 따라 묵상하려 합니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

본문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다룹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입장이 아니라, 구속사의 전환점입니다. 군중들은 예수님을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라고 외쳤습니다. 이는 시편 118편 26절을 인용한 말로, 메시아를 맞이하는 전통적인 찬송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기대한 왕은 로마를 몰아내는 정치적 구원자였습니다. 그들은 구원의 본질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본문의 헬라어에서 '왕'은 'βασιλεὺς'로 쓰이며, 주권과 통치를 상징하는 단어입니다. 그리스도는 참된 왕이셨으나, 세상의 왕처럼 군림하시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 모습은 스가랴 9장 9절의 예언을 성취한 것이며, 겸손과 평화의 상징이었습니다. 히브리어로 '샬롬'은 단지 전쟁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히 회복된 상태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평화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하지만 그 평화를 받아들이지 못한 자들에게는 구원의 기회가 닫히는 날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실을 아셨기에, 입성 직후 예루살렘을 향해 우셨습니다. 그 눈물은 안타까움과 심판, 그리고 사랑이 뒤섞인 눈물이었습니다.

외침과 침묵 사이

군중들의 외침은 크고 화려했습니다. 찬양은 뜨거웠고, 기대는 충만했습니다. 그러나 그 외침 속에는 깊은 오해가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알아본 것이 아니라, 그들의 필요를 채워줄 이로서만 보았습니다. 결국 그 외침은 며칠 뒤,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라는 외침으로 바뀌게 됩니다.

예수님의 입성은 본질적으로 '승리'의 퍼레이드가 아닙니다. 이는 '사망을 향한 순종의 행진'이었습니다. 그 길의 끝에는 십자가가 기다리고 있었고, 예수님은 그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질 어린 양이셨습니다. '어린 양'이라는 표현은 요한복음 1장 29절의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선언과 연결됩니다. 희생을 통해 이루실 평화, 그것이 예수님의 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예수님을 우리의 문제를 당장 해결해 줄 능력자로만 생각하곤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병을 고치고, 가난을 해결해주실 수 있지만, 그보다 먼저 우리의 죄와 불순종을 해결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고난주간의 의미는, 나의 편의를 위한 예수가 아니라, 나의 죄를 대신 지신 예수님을 깊이 만나는 데 있습니다.

왕이 흘린 눈물

눅 19:41은 이렇게 말합니다.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왕이 우십니다. 그것도 예루살렘을 보며 우십니다. 이 장면은 그리스도의 인간성과 신성을 모두 드러냅니다. 그는 참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참 사람이십니다. '우시며'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ἔκλαυσεν'이며, 조용히 흐느끼는 정도가 아니라, 격정적인 통곡을 의미합니다.

그분의 눈물은 단순한 감정이 아닙니다. 거절당한 사랑의 눈물이며, 구원받지 못할 자들을 향한 안타까움의 표현입니다. 예루살렘은 평화를 주러 오신 분을 거부하였고, 그 결과 멸망을 자초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종말을 내다보며 우셨습니다. 그분의 마음은 공의와 자비가 함께 있는 하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그 왕의 눈물을 알고 있습니까? 혹시 우리도 주님을 오해하고, 그분의 참된 뜻을 거절한 채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의 눈물은 지금도 흘러 우리를 향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여전히 우리를 초대하고 계십니다. 평화의 길로, 십자가의 길로 말입니다.

결론

고난주간은 예수님의 걸음을 따라가는 시간입니다. 그 걸음은 왕의 입성이며, 동시에 죽음을 향한 길입니다. 환호와 외침이 있었지만, 그 안에는 깊은 오해와 배신이 감추어져 있었습니다. 그 속에서 주님은 침묵하시고,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우리는 그 눈물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눈물은 우리를 위한 눈물이기 때문입니다. 고난주간을 지나는 이 시간, 우리의 외침이 피상적 기대가 아닌, 참된 회개와 믿음에서 비롯되기를 바랍니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은 여전히 우리 가운데 오십니다. 그분은 샬롬, 곧 온전한 평화를 주러 오신 분입니다. 우리 삶의 왕좌에 주님을 모셔 들이며, 그분의 눈물 앞에 무릎 꿇는 한 주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삶의 소음을 멈추고, 왕의 눈물을 듣는 조용한 마음으로 이번 고난주간을 걸어가야 하겠습니다.

그 환호의 외침은 우리를 향한 부르심입니다. 그러나 그 부르심에 응답하지 못하면, 외침은 침묵으로, 환호는 비탄으로 바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깊이, 그리고 진실하게 응답할 때입니다. 평화를 주러 오신 그 왕 앞에, 내 마음을 열어야 할 시간입니다. 오늘도 그분은 우리 곁에 오십니다. 그러나 아, 우리가 그 오심을 알아보지 못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분의 평화가, 눈물로 물든 우리의 심령을 적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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