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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칠언 묵상 1)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bibletopics 2025. 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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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누가복음 23장 34절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신 첫 번째 말씀으로,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을 위한 용서의 기도입니다. 이 말씀은 고통과 수치 속에서도 죄인을 위한 중보자의 사랑을 드러냅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죄 사함의 본질을 밝히며, 인류 구원의 출발점이 됩니다. 또한 십자가 고난의 중심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동시에 보여주며, 신자들에게 참된 용서와 자비의 본을 제시합니다.

죄인을 위한 기도, 중보자의 사랑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이 구절은 예수님의 십자가 위 첫 말씀이자, 고난의 서막을 여는 말씀입니다. 인간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예수님은 자신을 못 박는 자들을 위한 기도를 올리셨습니다. 단순히 인내나 선한 성품을 보여주는 차원을 넘어, 이는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신뢰하며, 죄인들을 위한 구속의 본질을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사용된 "사하여 주옵소서"라는 말은 헬라어로 aphiemi이며, 이는 "놓아주다", "보내다", "용서하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는 죄인을 단순히 처벌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죄의 사슬에서 완전히 해방시켜 주는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형식적인 용서가 아닌, 존재 전체를 죄에서 놓아주는 하나님의 구속적 개입을 요청하는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감정적 차원을 넘어서서 예수님이 대제사장으로서, 자신을 희생제물로 드리며 드리는 중보의 간구입니다. 이는 구약의 제사 제도를 성취하는 순간이며, 모든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진 분이 그 죄인들을 위해 기도하고 계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철저히 자신을 비우고, 자기중심적 판단이나 감정을 배제한 채,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기도를 드리신 것입니다. 그것은 단지 원수를 향한 자비의 표현이 아닌, 죄의 본질을 꿰뚫고 구원을 선포하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알지 못함으로 저지른 죄, 무지의 실체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향해 악을 행하는 자들을 향해,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알지 못한다"는 것은 단순한 지식의 부족이 아니라, 영적인 무감각함과 마음의 완고함을 가리킵니다. 헬라어로 oida는 '직관적으로 아는 것', ginosko는 '경험을 통해 아는 것'을 의미하며, 이 두 단어의 부정형은 전인적인 인식의 부재를 가리킵니다.

유대 지도자들과 무리들은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고, 오히려 그를 신성모독자라 정죄하며 죽음으로 몰았습니다. 이는 단순한 실수가 아닌, 깊은 죄의 무지에서 비롯된 행위입니다. 로마 군인들은 명령에 따라 행동했지만, 그들도 실은 인류의 죄된 본성을 상징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의 무지는 면죄부가 되지 않지만, 예수님은 그 깊은 죄의 무게 앞에서도 자비를 간구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인간의 무지를 넘어서는 차원에서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우리 또한 때로는 진리를 알지 못하거나, 알면서도 외면하는 죄를 짓습니다. 그 무지 속에서 타인을 판단하고, 스스로 의롭다 여기며 살아갑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인간의 한계와 연약함을 아시고, 그 연약함 속에 은혜를 흘려보내셨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무지한 존재인지를 돌아보고, 그 무지 속에서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인내와 사랑을 기억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무지한 자를 정죄하기보다, 구원의 손을 내미시는 분이십니다.

십자가 위에서 드러난 참된 용서의 능력

예수님의 용서는 특정한 집단이나 세대를 향한 것이 아닙니다. 이는 인류 전체를 향한, 그리고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긴 선언입니다. 십자가는 단순한 형틀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완벽하게 교차하는 지점입니다. 예수님의 "사하여 주옵소서"라는 기도는 과거의 죄인들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 각자의 죄를 향해서도 똑같이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이 용서는 값없이 주어진 것이지만, 결코 값싼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용서는 죄의 값을 대신 치르신 희생의 결과입니다. 히브리서 9장 22절은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는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구속이 반드시 대가를 요구한다는 영적 원리를 드러냅니다. 예수님은 피 흘림과 죽음을 통해 우리를 위한 속죄를 이루셨고, 그 결과로 용서의 문이 열린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기도는 우리에게 도전이자 위로입니다. 누군가를 용서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자신의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는 것과 같은 고통이 따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의 용서를 경험했다면, 그 용서의 힘이 우리를 변화시키며, 우리 또한 용서의 통로로 살아가게 합니다. 용서는 고통을 동반하지만, 그 끝에는 화해와 회복이라는 열매가 맺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그 증거입니다.

결론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는 단순한 기도가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의 구속 역사가 시작되는 선언이며, 고난의 깊은 절정에서 쏟아진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죽이는 자들을 향해 사랑과 자비로 기도하셨고, 그 기도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들려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고난주간을 맞아 이 말씀을 마음 깊이 새겨야 합니다. 예수님의 용서를 단지 지식으로 아는 데 그치지 않고, 삶 속에서 실천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나의 죄를 용서하신 그 사랑이 오늘 나를 통해 누군가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그 십자가의 정신이 내 말과 행동에 스며들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첫 번째 말씀이자 중보자의 기도는 우리 모두를 향한 복음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그 용서의 은혜를 경험하며, 우리 삶에서도 그 은혜를 나누는 자로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우리가 오늘도 예수님의 기도에 동참하며, 이 땅의 미움과 상처 속에 진정한 화해와 사랑을 심어가는 하나님의 사람들로 서길 기도합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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